점자 창안의 기초를 한글의 원리에서 찾은 박두성은 한글의 창제과정을 먼저 연구하였다.
점자는 한글을 가로로 풀어쓰는 거나 마찬가지이다(예: 한글 → ㅎ, ㅏ, ㄴ, ㄱ, ㅡ, ㄹ). 이런 경우 정안인이라면 앞뒤 문맥을 통해 쉽게 짐작을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눈을 감고 있으므로 촉각만으로는 혼동하기 쉽다. 즉, 학교 ㅎ, ㅏ, ㄱ, ㄱ, ㅛ라고 할 때 ㄱ, ㄱ이 연속되기 때문에 오독하기 쉬운 것이다.
박두성은 한글점자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과정을 이해하면서 극복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이 성삼문 등 8명으로 언문청을 두었다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본떠 1923년 4월, 송암이 손수 키운 당시 재경 제생원 졸업생 유도윤, 이종덕(뒤에 서울맹학교 교장), 노학우, 전태환(뒤에 한국맹인복지협회장), 이종화(뒤에 서울맹학교 교사), 황이채, 김영규, 김황봉 등 8명을 규합하여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점자의 기점이 적으면 식별하기 용이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초성(자음)과 중성(받침)에 주로 2점을 배당시키고 중성은 전부 3점으로 했다. 여기서 제한된 배점으로 한 점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점자 체계에 큰 지장이 없는 초성의 ‘ㆁ’자는 빼기로 했다. 사실 초성은 ‘ㆁ’자로 풀어 쓸 경우 빼도 무방하다.
다음으로 문장 중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많은 토(가, 을, 은, 의, 에 등)와 글자 구성이 복잡한 ‘예’, ‘와’, ‘워’ 등의 글자를 모아 약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초성 ‘ㆁ’을 뺄 경우, ‘아이’를 점역 할 때 뒤 글자 ‘이’에서 ‘ㆁ’을 빼면 ‘ㅐ’로 오독할 우려가 있어 ‘애’ 또한 독립된 약자로 표기하고, 마지막으로 문음 부호, 숫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지속된 3년 4개월여의 창안 노력 끝에, 마침내 1926년 8월 한글점자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한글점자는 자음과 모음의 규칙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원리만 이해한다면 쉽게 활용 가능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쓴 대로 읽을 수 있으며 중성의 대칭성 원칙을 과학적으로 적용한 점, 한 가지를 알면 다음 글자를 연상하여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며 우수한 문자체계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