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Family site

희망공간 서브이미지
  • 점자
  • 점자의 유래
  • 점자창안자 루이 브라이유
  • 한글점자의 창안과 유포
  • 한글점자의 우수성
  • 한글점자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 점자일람표
점자창안자 루이 브라이유
점자창안자 루이 브라이유

브라이유는 파리 근교의 조그마한 고장인 꾸쁘브레이에서 마구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세살 때, 아버지의 공방에서 칼을 가지고 놀다가 한 눈을 다쳤고, 그 후 남은 눈마저 시력을 상실했다. 그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의 아버지는 판자에 못을 박아 양각문자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10세 때 파리맹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그 곳에 교사로 근무하다가 1852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52년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프랑스 역사상 불후의 명성을 남긴 위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파리에 있는 빤떼옹 국립묘지에 이장하기로 결정하였다.


브라이유가 점자를 발명하게 된 것은 당시 프랑스의 군 장교였던 바르비에(Charles Barbier)가 발명한 야간문자(Ecriture Nocturne)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의 야간문자는 군사용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는 점으로 된 것으로서, 위에서 아래로 6점, 좌우 2줄로 모두 12점으로 구성되었고, 이 때 사용했던 점자 필기도구는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점자판, 점필과 비슷했다.


바르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야간문자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1821년 파리맹학교에서 그 문자를 시범해 보였다. 당시 파리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브라이유는 야간문자를 보고 위에서 아래로 6점을 한 번에 지각하기에 너무 길다는 것을 발견하고, 점칸을 반으로 줄여 위에서 아래로 3점, 좌우 2줄 모두 6점으로 된 점칸을 구성했다.


후일의 연구에서 6점의 배열이 촉독(觸毒)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브라이유는 1824년에 점자를 발명했고, 1829년 자신의 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837년 다시 수정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점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자는 맹인들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각장애 학생들은 필기를 하거나 책을 만들 때 점자를 계속 사용했다. 결국 브라이유가 죽은 2년 후인 1854년에 파리맹학교에서 공식 시각장애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의 모든 언어에도 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