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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사는 세상

희망공간 시각장애인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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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은 9회말 2아웃부터!- 이창훈 아나운서
작성자 박아영 작성일 2014-12-24 오후 1:16:33 (조회 : 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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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초로 방송국 앵커 활동을 하고 있는 이창훈 씨. 지난 2011년 52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KBS 앵커로 선발됐다.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안정적으로 뉴스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은 이창훈 앵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창훈 앵커를 만나보았다.
 
 
“인생은 9회말 2아웃부터
 
Q. 안녕하세요. ‘기분좋은 만남’이라는 코너에서 처음으로 이창훈 앵커를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 2011년 11월부터 진행해오던 KBS 1TV 뉴스 12 ‘이창훈의 생활뉴스’에서 하차하고 지난 4월 봄 개편 이후 KBS 2TV ‘사랑의 가족’ 프로그램 고정 코너에 출연하고 있어요. 매주 월요일 ‘이창훈의 마주보기’라는 코너를 통해 장애계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장애인분들이나 비장애인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삶, 인생 철학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또 매주 월요일 KBS 제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창훈의 행복뉴스’ 코너를 맡아 한 주간 장애계에서 일어난 좋은 소식들을 전해드리고 있죠. 또 하나는 5월부터 복지TV에서 매주 목요일 메인 앵커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외부초청강사 활동, 야구해설중계 등 외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매주 바쁘지만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Q.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앵커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앵커라는 직업에 어떻게 도전하게 되셨나요?
 
2011년도에 KBS 홈페이지에서 장애인 앵커 선발 공고를 보게 됐어요. 처음엔 많이 고민했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해본다는 것이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응시를 해서 떨어지더라도 저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았죠. KBS 방송국에 가본다는 것, 메이크업을 받아본다는 것, 시각장애인 최초로 뉴스 앵커가 된다는 것. 모든 것이 저에게는 흥미롭기도 했고 매력있는 일이라고 생각됐어요. 또 2007년부터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KBIC)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방송 경험이 있어 방송 일에 대해 어느정도 자신감도 있었어요.
제가 앵커 선발 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부모님의 지지가 컸어요. 곁에 함께 생활하면서 지내지는 않지만 늘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실패와 성공을 떠나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고 큰 힘을 주셨어요. 지금도 역시 저를 사랑해주시고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 계시죠.(웃음)
 
Q. KBS 장애인 뉴스 앵커 공채에 합격하신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앵커 공채에 합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뜻밖의 일이라 합격 통지를 받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앵커 시험 준비는 꾸준히 해왔어요.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듣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서 읽고, 녹음하고 또 녹음한 것을 듣고...이렇게 반복적으로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건강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죠.
저의 이런 노력도 있었지만 방송사 측에서도 저를 좋게 평가해주셨어요. 방송사 측에서 저의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시고 선발해주신 것 같아요.
 
Q. 국내에서 장애인 뉴스 앵커 채용은 처음으로 시도된 일이였는데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첫 방송 이후 기분이 어떠셨나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어요. 제가 앵커 선발 시험을 봤을 때 정말 쟁쟁하신 분들과 함께 했었거든요. 그분들을 대신해 제가 이 자리에 있다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안될 수가 없더라구요. 또한 최초의 장애인 뉴스 앵커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담이 있었어요.
첫 방송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어요. 완벽했어야 했는데 조금 실수를 했었거든요. 오히려 두 번째 방송 때 긴장해서 떨리던걸요? 첫날은 정신없이 지나가버렸지만 둘째날은 ‘오늘은 더 잘하자’라는 마음으로 방송해서 인지 긴장 속에서 방송을 했었어요.
 
Q. 이창훈 앵커의 어린시절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네요.
 
생후 7개월 때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신경이 훼손돼 시력을 잃게 됐어요. 처음엔 부모님도 충격이 크셨어요. 시각장애는 고칠 수 있는 장애라고 생각하셔서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도 하고 시술도 해봤지만 안됐죠. 이후 시각장애를 받아들인 어머니는 8살 때 ‘공부를 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며 저를 서울로 보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8살 때부터 부모님 품을 떠나 고향인 진주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한빛맹학교에서 생활하게 됐죠.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음악활동도 고등학교때는 학생회장도 했었어요. 하지만 시각장애인 친구들끼리만 부딪치며 생활하는 것에 약간의 지루함을 느꼈어요. 제 또래의 비장애인 친구들과도 만나서 놀고 싶은 열망도 있었고요. 그래서 대학만큼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에 진학했죠. 그 곳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여러 가지 활동도 했죠.
 
Q. 앵커가 되기 까지 많은 고난과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는 자신만의 좌우명이 있나요?
 
제 삶에 있어서 아직까지 큰 고난이나 시련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렇게 생각해요.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야구에서 보면 ‘9회말 2아웃’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홈런을 치고 잘나가고 있지만 어느새 9회말 때 역전이 될 수도 있잖아요. 또 인생은 삶의 누적이라고 생각돼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냐는 것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저 역시도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을 통해 방송을 하지 않았더라면 앵커라는 직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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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창훈 앵커의 방송 활동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향후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방송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장애인인식개선에는 방송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뉴스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장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돼요. 그래서 계속적으로 방송활동에 집중할 생각이예요. 또한 향후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장애인인인식개선을 위해서라도 비장애인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지금 KBS에서 진행하고 있는 ‘안녕하세요’라는 토크쇼에 출연해서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같이 공감하며 이야기고 싶어요. 또 젊은 층들과 많이 만나서 장애인인식개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활동하고 싶어요.
 
 
 
Q. 이창훈 앵커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일깨워주고 계신데요. 많은 시각장애인분들이 이창훈 앵커를 보고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시각장애인분들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혔으면 해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해보고 알아가는 것들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경험만큼 좋은 것이 없더라고요. 또 자신을 관리할 필요가 있어요. 건강 관리나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든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정말 좋은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새로운 길에 혼자서 가는 것이 때로는 외롭기도 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저를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못할 때는 질책해주시고 힘들 때는 지지와 힘을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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