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여름여행, 추억은 차곡차곡
전근자(주부)
모두들 여름휴가를 간다고 난리인데 우리도 어디론가 떠나자!
울산시각장애인선교회 자원봉사자 일곱 명과 우리 시각장애인 세 명이 한 덩어리로 뭉쳤다.
자동차 두 대에 사람과 짐을 때려 싣고는 룰루랄라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여기는 단양이고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면 영월군 김삿갓면이 나오렸다?
물소리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어느 산속 마당에 내려서니 여림이 할머니께서 맞아주신다. 야호홋! 금방 쪄낸 옥수수부터 몇 통 하모니카를 불어대고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다.
그 다음날 새벽부터 일은 벌어진다. 지난 밤 불려놓은 콩을 믹서에 갈아 두부를 만들고 있다. 마당에 솥을 걸고 불을 때다 보면 어느새 소나기가 한 줄기 지나간다. 콩 갈은 것 끓여 자루에 담고 짜니 비지가 남는다. 콩물을 다시 솥에 넣고 간수를 넣으니 이번엔 순두부가 탄생했다.
순두부 한 그릇씩 양념장 쳐서 퍼먹는다. 우와! 바로 이 맛이야! 고향 엄마 맛이라구!
순두부를 보자기에 싸서 돌덩이를 얹어 물을 빼니 두부가 나왔다. 그 두부 썰어서 양념장과 김치에 싸먹으니 입안이 황홀지경이다.
먹고만 앉아있으면 안되지! 모두들 자동차에 올라 청령포에 다다른다.
복지카드만 있으면 두 사람이 무료입장인데! 왜들 복지카드를 안 들고 온 거야?
대표자 한 명이 가서 떠들어댄다. “여기 시각장애 세 명, 지체장애 한 명, 원호대상 한 명 그리고 일반 다섯 명 오케이?”하니 무사통과다. 입장료 이만 원은 떡 사먹어야지∼!
모두들 배에 올라 파란 강물 건너가니 험한 돌짝밭이 우리를 맞아준다. 역사책이나 연속극에서만 듣던 단종애사를 여기서 다시 듣게 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강물 저편에 혼자 쓸쓸히 지내다 사약을 받았을 열일곱의 단종이 눈물나도록 불쌍하다.
태양볕은 얼마나 강렬한지 ‘앗! 뜨거워!’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이럴 땐 시장 안으로 피난을 가는 거야! 서부시장에 들어가니 먹을 것 천지다.
먼저 말로만 듣던 올챙이국수를 한 그릇씩 후루룩 들이켰더니 뱃속까지 시원해진다. 모밀전병은 주문이 밀려 그 자리에선 먹을 수가 없다 하니 어쩌랴! 주문을 해놓고 돌아서서 닭강정 두 박스 사가지고 차에 올라 냠냠쩝쩝 뜯어먹는다.
다음 코스는 영월 재래시장이다. 몸보신해야 한다며 개고기 사러 온 것이다. 개고기 살 사람은 그것 사러 가고, 우리는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메밀묵도 먹는다. 나무 주걱도 사고, 또 이것저것 먹어보고 만져본다. 요런 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어?
귀가하는 길에 김삿갓 계곡에 가서 김삿갓도 만나보려고 했지만 날이 너무 더워 그것은 내일로 미루고 모두들 집 앞 계곡물에 첨벙첨벙 뛰어든다.
누구는 개고기 삶느라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불 때고 있고, 누구는 시냇가 평상에서 옥수수 깨물고 있다. 밤에 옥수수 두 접을 사다가 껍데기 까느라 낑낑대지만 마냥 즐겁다. 어릴 적 까본 옥수수 껍데기를 이렇게 실컷 까보다니! 마당에 걸린 솥에선 옥수수가 익어가고 불속에선 호일에 싼 감자가 익고 있다. 강원도에 왔으니 별미란 별미는 다 맛봐야지! 봄에 삶아서 냉동시켜 놓은 곤드레를 꺼내 쌀을 넣고 밥을 지으니 곤드레 비빔밥이 되었다.
하루하루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우리들 추억도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