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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 기고] 그땐 그랬지: 우리 독서의 발자취 (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10-31 오후 12:20:24

조회수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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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 기고] 그땐 그랬지: 우리 독서의 발자취 (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10-31 오후 12:20:24 (조회 : 758)
우리 독서의 발자취
 
이진규
 
  시각장애인들이 독서를 즐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촉각을 이용한 점자 읽기와 청각을 이용한 낭독 독서가 그것이다. 그동안의 독서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상당히 현란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책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취학 전인 유년기부터였을 것이다. 나이에 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면서 책 속에서 먼저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의 세상이 이렇게 더 많구나!’라는 발견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 선탈하지 못한 매미에 불과함을 또렷이 자각했으리라.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없는 우리는 보통 열 살 무렵부터 집안의 형제들이 읽어주는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유년기를 거쳐 처음 학교에 입학하니 읽을거리라곤 교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책이 다였다. 그 천여 권의 책들은 대부분 교과서나 참고서였음을 감안할 때,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간간이 읽어주는 책이 독서의 전부였으므로 우리의 독서 환경은 거의 사막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그나마 독서 허기를 채워 주신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표현력과 구사력 하나로 독서에 대한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주셨다. 시중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도서나 영화를 먼저 탐독하거나 보시고 나서 멋진 화술과 입담으로 알뜰살뜰 물어다 맛있게 버무려 먹이셨다. 그건 젊은이들이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어느 정도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라는 뜻이었으리라.
  그 선생님은 이화여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셨다고 했다. 그 분은 소설이건 영화이건 그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 주셨는데, 그 말솜씨가 얼마나 멋들어지고 능란했던지 책을 직접 읽기보다, 영화를 직접 보기보다 훨씬 더 맛이 있어서 오롯이 심취했던 듯하다.
  그 작품들의 제목을 열거하면 빙점’, ‘홍작’, ‘양치는 언덕’, ‘사운드 오브 뮤직’, ‘황야의 무법자등이었던 기억인데,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말솜씨에 우리는 어떤 영화보다 책보다 더한 감동으로 넋을 잃고 듣던 시간들을 아직 가슴에 예쁜 선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뛰어난 화술과 묘사력으로 젊은 가슴에 단비를 뿌려 주시어, 우리의 꿈이 한층 아름답고 다채롭게 채색되기를 바라면서 열정을 쏟아 주시던 그 선생님도 지금쯤은 인생의 황혼 길 어디쯤을 넘어가고 계실 테지.
  그밖에도 독서를 도와준 사람들은 또 있다. 토요일이면 서울의 고등학교 독서클럽 학생들이 맹학교로 찾아와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렇게 토요일마다 찾아와서 낭독 봉사를 하던 학생 중에는, 후에 소설가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몇 년 전에 타계한 최인호 학생도 있었다. 그의 낭독은 매우 감성적이고 또랑또랑하여 책을 듣던 우리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그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에는 책 들을 사람들이 전혀 모이지 않아서 나 혼자 책을 듣다가 깜빡 졸았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 학생은 한동안 독자 없는 낭독을 하고 있었던 셈인데, 나중에 그 사실을 느끼는 순간, 나는 정말 얼마나 미안쩍던지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마치고 들어선 사회는 1970년대 초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당시 점자도서관은 전국적으로 두 곳이 전부였다. 그 하나는 본지의 주체인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이고, 또 하나는 시각장애인 육병일 씨가 사재를 털어 시작했다는 한국점자도서관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기관에서는 아직 점자책 제작에만 주력했고, 그 책을 우편으로 주고받던 일이 무척이나 번거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70년대 후반쯤부터이던가. 이병돈, 나응문, 강초경 같은 후배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만든 도서가 있었으니, 이른바 소리의 메아리라는 녹음테이프도서였다. 그 독서 방식은 그동안 점자책이라는 틀에만 매여 있던 우리의 독서 형태를 일보 전진시킨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스폰서를 찾지 못해서인지 그 소리의 메아리는 얼마 가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그로부터 전국적으로 도마다 점자도서관이 생기기 시작해서 점자도서와 테이프도서와 CD도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런 도서들은 우리의 독서법을 느린 손끝 독서에서 빠른 듣기 독서로 바꾸어 주었으므로 그 호응도가 높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것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도서물의 송달과 수취의 번거로움이었다. 다 읽은 책을 일일이 싸들고 우체국까지 왕래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는데, 2000년도에 들면서 그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방식이 나왔으니, 그건 인터넷을 통한 이른바 인터넷도서와 다운을 받아 스크린리더로 읽는 전자도서였다. 그밖에 잠시지만 전화를 통한 ARS 방식의 음성도서도 잠깐 등장했던 기억인데, 그 방식의 독서는 전화료 문제로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열악한 독서 환경도 이제는 일취월장하여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을 거의 종류별로 찾아 들을 수 있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옛말에 남아수독 5거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요샛말로 바꾸면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일 것인데,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을 추산해 보면 대략 3천 권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책 속에서 만난 수많은 순간들은 세월 뒤에서 흐리멍덩하게 바래져 요즘은 그 책들을 다시 찾아 읽기도 한다.
  그나마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반짝이는 것들은 주로 유년기에 읽었던 책들인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이제 막 피어나는 꽃나무가 처음 맛본 자양분을 가슴 깊이깊이 뼈로 품은 까닭이리라.
 
(2019. 11. 1. 제10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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