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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넌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원윤선)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10-15 오후 3:53:11

조회수 994

게시물 내용
제목 넌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원윤선)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10-15 오후 3:53:11 (조회 : 994)
넌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원윤선
 
  찌고 달구고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이 여름이 과연 지나가기는 할까 싶었는데, 때가 되면 계절은 어김없이 다음 순번을 위해 자리를 비운다. 자리 비기를 차분히 기다리던 가을이, 팔다리에 오소소 소름 돋우는 소슬바람부터 슬쩍 밀어 넣고 이제 본격적으로 제 계절을 준비하려는지 가끔 옷깃을 여미게도 만든다.
  가을은 오곡백과 화려한 풍요로 왔다가 낙과와 낙엽과 퇴락의 쓸쓸한 모습으로 뒤를 보이며 떠난다. 그러한 뒷모습 때문에 우리는 사색하지 아니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사색은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타고난 지병을 새삼 곱씹게 한다.
  가을바람에 떠밀려 사색의 공간으로 발을 들여 본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 아내가 있어도, 남편이 있어도, 혹 애인이 열둘이나 더 있다 할지라도 결국 인간은 외롭다. 성경에 의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간은 신에게로부터 분리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분리란 근원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고 이 이탈은, 인간에게 영원한 상실감과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을 일으키고, 목이 마른 인간은 끊임없이 물을 찾아 외롭게 유리방황한다.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물을 찾아다닐 뿐 물 찾는 이를 위해 물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는 아무도 없다. 물 없는 자들끼리 서로 물을 구하려니 다툼이 나고 끊임없이 전쟁이 난다.
  너는 물을 원하고 그들도 물을 원하며 나도 물을 원한다. 서로를 위해 준비된 물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다. 없는 물을 서로에게 요구하며 아우성치느라 우리는 더욱 목이 마르다. 이 목마름이 다름 아닌 외로움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죄를 범하여 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범죄한 인간이 죄의 결과로 받은 형벌 중 가장 혹독한 벌이 바로 이 고독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불치의 지병으로 유전자 속 깊이 품고 태어난 존재들이 아닐까?
  난 요즘 주변에 화난 사람을 많이 본다. 친구나 선배나 후배들이 화가 나있고, 지하철 안에서, 버스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일터에서도 누군가를 향하여, 때로는 어떤 상황을 놓고 화를 터뜨린다. 왜 그리 화가 났나 알고 보면 별일도 아닌 듯한데, 당사자는 심각하게 화가 난다.
평소에 아끼는 후배 중 하나가 요즘 힘들어 보였다. 뭔가에 화가 났나 싶기도 하고 혹은 내게 화가 난 듯도 싶고...
  기다리기로 했다. 스스로 회복되거나 혹 내게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때가 되면 하겠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는 노골적이 되어 갔고, 다소 불손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니 나도 차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대로 참아주기만 할 순 없겠다 싶다.
  찻잔을 사이에 놓고 앉았다. 요즘 불편한 일이 많은 모양이라고 물었다. “많죠. 하지만 제 감정적 문제일 뿐이니까요...” 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래도 얘기해 보자고 했더니, 봇물 터지듯, 마치 농익은 종기가 바늘 끝으로 살짝 닿기만 해도 툭 터지듯, 그 안에 갇혀있던 분노와 상처와 눈물을 후두두둑 쏟아낸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난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 준 점도 있는 듯하여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점점 무례히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고, 이쯤에서 한 마디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목이 막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너 좀 너무 무례한 것 같구나!”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그 말뭉치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가슴 속을 휘돌아 눈물로 솟구치고 말았다.
  “넌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그 무례함을 나무라고 야단치려 했는데 난 그걸 알고 말았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는, 인간은 하나같이 외로워서 그리들 화가 났다는 사실을.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세 가지 근원적 질문을 품고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간은 모두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경험을 통해 무의식에 저장하고 그것이 그 사람의 세계관이 된다고 한다. 우리 역시 각자의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난 이렇게 나의 해답을 달아 본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우리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의 문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각자의 깊은 외로움을 품고 주어진 삶을 기어이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종교적, 철학적 사유 등을 통해 다양한 방향의 길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 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본다.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보듬는 마음으로 위로하면 되지 않을까?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누군가를 볼 때 불같이 화를 터뜨리는 그가 원래 성격이 난폭해서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유전자 깊은 곳에 둥지 튼 외로움 때문에 지쳐가는 그 연약함을 살피고 ,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하고 다독이며 우리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떨까? 타고난 지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순 없을지라도 화에 화를 더하다 전쟁이 되어 다 함께 무너지는 극단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고독한 계절 가을이다. 이 가을 끝에는 더 춥고 더욱 고독한 계절이 기다리고 있다. 혼자 이 추위를, 이 고독을 이겨내긴 버거울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 일이다. “, 외로워서 화가 났구나!” 서로 깊이 이해해 주고 다독이면서 타고난 지병, 이 외로운 삶의 숲을 함께 헤쳐 나가보면 어떨까?
 
(2019. 10. 15. 제10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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