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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 기고] 그땐 그랬지: 점자와 처음 만나던 날 (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8-30 오후 3:42:32

조회수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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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 기고] 그땐 그랬지: 점자와 처음 만나던 날 (이진규)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9-08-30 오후 3:42:32 (조회 : 802)
점자와 처음 만나던 날
 
이진규
 
  196145일은 내가 서울국립맹학교에 초등부 1학년으로 입학하던 날이었다. 날씨는 맑고 따뜻했다. 각 도에서 모인 학생들은 남녀 합쳐 18명이었고, 다들 취학연령이 한두 살에서 열 살까지 초과한 아이들이었다.
  오전 중에 간단한 면접을 마치고 기숙사가 배정되었고,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긴 식탁과 의자가 있었고, 앉아서 살짝 앞을 만져 보니, 국그릇 하나와 밥공기 하나가 식단의 전부였다.
  게다가 밥을 입에 넣으니 온통 보리였고 반찬이라는 게 당면무침 하나가 전부였다. 내 생전 처음으로 최고의 간편식을 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를 따라왔던 식구는 누나와 형과 아버지셨는데, 나를 두고 가시던 아버지께서 교문을 나서면서 이러시더란다.
  “새끼 하나 버리고 가는구나.”
  부실한 식사와 계단투성이인 인왕산 골짜기에다 나를 덩그러니 떼 놓고 가시는 마음이 오죽 짠했으면 그러셨을까 싶다.
  기숙사라는 곳에 들어가니 한 쪽 벽으로는 개인 사물함 궤짝이 나란히 있고, 한 쪽 벽으로는 복층 벽장이 있었는데 그 작은 방에 한 방 식구가 다섯이나 되어서 한 사람은 벽장에서 자기도 했다.
  이튿날은 드디어 우리가 점자와 만나는 첫날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손바닥만한 판때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그 판때기에는 여섯 개의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것이 점자의 기본 틀이라며 점과 점이 모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만난 점자 그것은 우리에게 문자의 쓰고 읽기를 가능케 하는 메신저였고, 문맹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지식을 공급하는 도구였으니, 점자야말로 나를 어둠의 사각지대로부터 밝음으로 이끌어준 일등공신이라 하겠다.
  점자를 익힌 지 석 달쯤 되자 점자교과서라는 우둘투둘한 종이책이 분배되었다. 처음 읽었던 국어책 내용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문장이 있는데,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와 같은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런 문장을 읽으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즈음 우리의 나이가 대충 중고교생 연령이었기에, 그런 내용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으리라. 그때부터 우리는 누가 교실에서 너무 떠들거나 시끄럽게 굴면 얘야, 저 밖에 나가서 바둑이하고 놀아라라는 말을 유머 삼아 써먹던 농담도 떠오른다.
  그 무렵, 나는 처음 배운 점자가 하도 재미있고 신기하거니와, 책 속의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새롭고 즐거워서 교내 점자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렸다. 주로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취침시간조차 무시하고 점자책을 이불 속에 끌고 들어가 새벽까지 읽곤 했다. 물론 불이 없어도 읽기가 가능한 점자였기 때문이리라.
  점자지는 어느 정도의 두께가 있어야 그 쓸모가 있기 때문에 당시 그런 종이를 구입하려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입맛에 딱 맞는 잡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유의 벗이라는 아주 얇은 잡지였다. 6·25 전쟁 중에 미국이 한국국민에게 미국을 알리려고 만든 소책자였던 것인데 뜻밖에도 점자지로 전락하여 쓰이고 있었으니, 비록 인기 있는 스타 잡지는 못 되었어도 어느 사람들의 어둠을 밝히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잡지여서일까, 그 종이는 지금도 추억 속에서 무슨 공덕비처럼 남아 있다.
  그때만 해도 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면 자기 교과서를 제 손으로 만들어 쓰는 이른바 자급자족의 시대였다. 교과서를 만들자면 자유의 벗이라는 종이를 잔뜩 싸들고 인쇄실로 가서, 아연판이나 알루미늄을 두 겹으로 겹쳐 찍은 점자본을 찾아서 사이사이에다 종이를 끼워 넣고 전기롤러를 돌려서 나온 점자지를 다시 실로 엮는 제본까지 해서 써야 했던 것인데, 그 작업이 꽤나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요즘 말로 무상노동에 해당된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냥 그것이 내 일이구나 하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또 무슨 요상한 괴벽인지.
  그때만 해도 점자지가 엄청나게 귀했던 듯, 너무 귀해서 생긴 괴상한 물건이 하나 있다. 일반적인 점자지가 아니라 하급에 속하는 점자지가 있었으니, 이른바 재생 점자지였다. 재생 점자지란 이미 점자를 찍어서 한번 써먹은 종이를 물에 불리고 말리고 발로 지그시 밟아서 다시 점자지로 쓰는 종이를 이르는데, 모든 물자가 귀하던 때였음을 방증하는 물건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으리라.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점자책이 하나 있다. 그 책은 동학이던 한 친구가 방학 때마다 언니들이 불러 주는 책을 점자로 또박또박 받아써서 한 권의 선물처럼 엮어 왔던 책들이다. 개학 때마다 한 번 읽어 보라며 내밀던 책을 건네받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이번엔 또 무슨 책일까 싶어 정말 가슴 뛰고 설레었지!
  그 책들 중에는 박계형의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모윤숙의 렌의 애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이 있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그 지고지순한 사랑 앞에 우리의 사춘기 가슴들은 또 얼마나 덜컹거렸던가.
  점자와 내 청춘이 만나 청운의 미래를 설계하던 날들도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친구들은 하나둘 흩어지고 떠나가고 사라졌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 손끝에서 말을 걸어 주던 친구는 점자였는데, 갖가지 전자기기에 밀려 점자 쓸 기회가 점점 줄고 있어 멀어진 거리만큼 아쉽다.
  그리운 것들은 몽땅 저 세월 뒤에 있는데 지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
 
(2019. 9. 1. 제10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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