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박종래(안마사)
나는 내 생활의 수단으로 이료업을 하고 있다.
사무실을 따로 내지 않고 살림하는 내 집에서 방 한 칸을 비워 이료 시술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무렵부터 한참 동안은 지금처럼 사회나 삶 자체가 복잡하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사는 집에서 방 한 칸을 비워 손님을 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방 한 칸을 비워 이료업을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요새 사업장을 열고 있는 사업자들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진 형태의 시술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료업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이료원에서의 사소한 일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나는 손님이 오면 먼저 하는 일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것이다. 신발의 앞축이 앞을 향하도록 놓는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신고 온 신발을 자신이 나갈 때 편리하게 신을 수 있도록 돌려놓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도 신발의 앞축이 앞을 향하도록 항상 돌려놓는다. 손님이 나오자마자 나는 화장실의 신발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붙어 있다.
손님들이 현관에 들어오면서는 신발을 신기 편하도록 돌려놓지는 않아도 가지런하게는 벗는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발 한 짝은 구석에 가 있게 신발을 벗어버리기 일쑤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내가 그 신발 한 짝을 찾느라고 발로 얼마나 더듬고 있는지는 우리 이료원에 들러주는 손님들은 모를 것이다.
시술 받으러 오는 손님 중 아주 드물게 신발을 돌려놓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께는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게 된다. 며칠 전에도 생글생글 고은 웃음을 짓는 어떤 부인이 다녀갔는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다른 사람이 신기 좋게 신발을 돌려놓는 것을 보았다. 급히 가버려서 칭찬해주지는 못했지만 혹시 다음에 오면 내게서 대단한 칭찬을 들을 것이다.
집에서 뿐만 아니고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에도 나는 내 신발을 나갈 때 신기 좋도록 아예 돌려놓고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런 내 행위에 대하여 아내는 유별난 습관을 가졌다고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서양 사람들은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신발을 벗으면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는 온돌방이고 일본은 다다미방이어서 신발을 문 밖에 벗어두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신발의 앞축을 앞을 향해 놓는 예법은 일본 사람들이 잘 지키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갈 때 가지런하게 신발을 벗는 습관이 몸에 붙어 있는 사람이 드물다. 어떤 이들은 한 짝은 멀리 가 있도록 벗고 들어간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해야 하는 예의는 알면서도 실천하려는 것 같지가 않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 성경 말씀을 잘 인용하게 되는데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신발을 예의 바르게 벗는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사소한 행위지만 이 사소한 행위가 각자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소하고 작은 일들을 너무 편하고 쉽게 취급하고 있는 우리들의 행태에 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바쁜 세상살이에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고 또 그 신발을 나중에 신기 편하도록 돌려놓는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예의냐고 말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하찮은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 이와 유사한 다른 일도 소홀히 하게 되는 하나의 단면이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해가 왔다. 우리들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이나, 가정에서 이 초라한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손님들의 신발을 잘 돌려놓도록 훈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하는 이들은 자칫 이 사소한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살펴 헤아렸으면 한다.
새해를 맞아 여러 중대한 계획들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새해에는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신발의 예의만이라도 꼭 몸에 배도록 실천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행위가 우리들의 생활 전체를 절도 있게 해주는 하나의 지렛대 노릇을 해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