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기행
김판길(시각장애인 시인)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섬, 외도 가는 날. 파란 하늘과 맑고 쾌청한 날씨가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우리 내외와 아들 셋이서 가는 가족여행을 1년에 한 번은 꼭 가게 되어 참 감사하다.
김포에서 김해공항까지 40분 정도 걸린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비행기는 서서히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몇 번 타보지는 않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세 식구는 좌석에 앉자마자 기도를 했다. 무사히 안전하게 김해공항에 도착하기를 그리고 이렇게 좋은 가족 여행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해하며….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위를 지나고 푸른 남해를 선회하여 약속된 시간에 무사히 착륙했다. 아주 유능한 조종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별 요동 없이 착륙했기 때문이다. 기내 서비스로 주는 토마토 주스 맛도 좋았다. 하늘을 날아서 빠르게 올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비행기를 만든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가덕터널 가거대교를 지나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거제도에 도착했다. 가덕터널은 해저 44미터 깊이로,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국내건설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해상을 통과하는 긴 다리는 속까지 다 시원함을 주는 명물로 알려져 있다.
근처에는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가 있다. 그 섬은 외부인들은 들어갈 수가 없고 헬기로만 이동가능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고 때 아버지가 직접 찍어주었다는 비키니차림의 사진으로도 유명한 저도를 지났다.
참 그러고 보면 인생무상 헛되고 헛되도다. 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구나 그리고 한 번은 죽는구나 라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며, 남은 삶을 정말 잘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고 새삼 느꼈다.
크게 건넌다고 해서 거제도라고 하는데, 이곳 분들은 이 섬이 제주도보다 크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거제도엔 조선소가 세 곳이 있고 사철 푸른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잘 보존이 되어 있어 공기가 맑고 조용하다.
우리는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가장 시설이 좋다는 리조트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잠시 산책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여행하기 딱 좋은 9월 중순의 거제도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지하에는 편의점이 있고 카페와 뷔페도 있었다. 베란다는 널찍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바다를 보면 정말 좋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고, 구조라 선착장으로 갔다. 구조라해수욕장과 이어진 배턱은 깨끗하고 한산했다. 9시 반 드디어 배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선장의 걸쭉한 톤으로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외도 관광 한려수도 해금강 관광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데이~”
바다에 바람은 없었지만 배가 좌우로 조금씩 기우뚱기우뚱했다. 중간쯤에 거짓말처럼 바다에 높고 거친 돌산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바다의 금강산, 해금강. 바람에 깎이고 물에 씻긴 기암괴석이었다. 입담 좋은 가이드 선장의 “자, 이제부턴 비포장길입니데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배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꿈에 그리던 외도 도착.
한 시간 40분 동안 돌아보고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 우리 배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배 손님들로 외도는 만원이었다. 성수기인 휴가철엔 한 배에 보통 삼백 명씩 타고 온다고 했다. 군대처럼 열을 지어서 쭉 갔다가 왔다고 한다.
도대체 이 섬이 뭐길래... 시멘트로 포장된 오르막길 좌우측엔 이름도 알 수 없는 향나무가 기다란 빵을 다닥다닥 진열해 놓은 것처럼 잘 조경되어 있었고, 뒤편엔 키 큰 선인장이 쭉 서서 우릴 환영해 주는 것만 같았다. 가시도 삐죽삐죽 잎도 길쭉길쭉 또 바위도 자연석 그대로 어디 한군데 모자람없이 사람 손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내가 혹시 외국에 온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온갖 진귀한 나무들, 그리스 신전 모형, 돌로 형상화된 활 쏘는 사람, 남녀가 포옹하고 키스하는 모형, 천사, 예수, 성모상 등등. 분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잠시 땀을 식혀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나무는 손으로 잠시 만지기만 했는데도 주위에 내 손에 오래도록 허브향이 나기도 했다. 대나무 아래에서 먹는 메론맛 아이스크림은 입안을 향기롭게 했고 팥빙수의 진한 맛은 더위를 한 번에 싹 식혀 주었다. 중간 중간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환타지 음악은 이곳이 지상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잘 어울렸다. ‘야, 이런데서 돈 걱정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은 외지인들은 숙박이 안 된다는 점. 한 바퀴 돌아보고 나가야 된다는 것.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한 개인이 섬을 사서 40여 년간 낙원처럼 가꾸었다는 것.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라면 한번쯤 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외국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바다 바깥에 있는 섬 외도로 많은 분들이 여행을 즐겼으면 한다. 또 거제도엔 몽돌해변이 있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질 때 촤르르 촤르르 구슬만한 돌들이 구르며 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직접 가서 들어보라. 언제까지 이곳에 서서 그 소리에 흠뻑 빠지고 싶을 테니까. 또 풍차도 있다. 장승포에 유명한 맛집이 하나 있는데, 항만 식당이라고 해물 스페셜을 시키면 돌문어에 각종 조개, 게, 오징어, 홍합을 실컷 먹을 수 있다. 이번엔 먹지 못했지만 꿀빵과 유자빵도 꼭 한번 먹으면 좋을 특산품이다. 시간 내서 렌터카 운전하며 열심히 가이드 해 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한번쯤 여행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본다.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봤어 하는 분도 있다. 꼭 기회를 만들어서 여행해 보길 권한다. 분명 그전과는 뭔가 달라질 것이다.
이 가을 외롭게 살지 말고 모두들 행복하기를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꼭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