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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토끼의 아름다운 결심(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2-28 오후 1:55:55

조회수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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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토끼의 아름다운 결심(이진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2-28 오후 1:55:55 (조회 : 2056)
토끼의 아름다운 결심
이진규(임대업)
 
  그 친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재미있는 말솜씨로 좌중을 유쾌하게 이끄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겐 아들만 둘이 있다. 그들은 소위 무뚝뚝한 경상도 보리 문디들이다. 그중에서도 첫째인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스럽게 고집이 센 아이였다.
  “요한아, 옆집 아처럼 좀 아빠한테 사근사근하면 안 되겄나?” 친구는 종종 요한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면 요한은 살짝 찌푸리며
  “아빠는 가네 아빠만큼 우리 얘기 잘 들어주나?”
  하며 반박했다. 그 애는 그렇듯 항상 제 아빠한테는 무뚝뚝한 문디 자식이었다. 그런 그 애에게도 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애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그러니까 고작 스무 살 때였다.
  그 친구는 운 나쁘게 간암에 걸렸었다. 고민 끝에 주치의와 의논 결과 간이식을 결정했고, 주치의가 제안한 방법은 친구의 간을 완전히 떼어내고 기증자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기증자는 젊으면 젊을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좋다고 했다. 농담 삼아 하는 말로, 의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이 젊고 싱싱한 간이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흡사 문둥이의 간 타령처럼 무섭더란다. 식구들에 대한 몇 가지 검진 결과 그 집에서 최적격자는 요한이더란다. 요한에게 간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별주부전의 거북이 같았단다. 용왕님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야 하는 그것이 하필 아들의 간이라니. 거북이는 어렵게 토끼에게 상황을 설명했단다. 그랬더니,
  “엄마, 그건 당연한 거다.” 토끼의 첫 대답이었다. 배를 갈라 자신의 간 절반 이상을 떼어줘야 하는 대수술을 앞두고 마치 제 손에 들린 사과 반쪽을 나누어 주듯 가볍게 여기는 토끼의 결심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단다. 뜻밖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거북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토끼의 대답은 간결한 한 마디가 다였단다.
  “아빠 아들인데 뭐.”
  마침내 이식을 결정하고 동의서를 쓰는 토끼에게, 의사 선생님은 전신마취를 할 거라는 이야기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는 점을 수차 설명했지만, 은근히 겁을 먹은 토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신마취와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찾아보더란다. 그러다 우연히 전신마취의 부작용에 관한 영상을 보곤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사 선생님에게 재차 확인하더란다. 의사 선생님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고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제 눈으로 직접 부작용 영상을 확인한 토끼의 입장은 달랐던 모양이다. 덮쳐오는 두려움 때문에 하룻밤을 꼬박 새우더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저런 상상으로 그날 밤 토끼의 두려움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날부터 아이는 더 튼튼한 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더란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도 하고, 튀기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더란다.
  “아빠가 내 간 쓰다가 품질이 나쁘다고 물리자카문 우짜노?”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을 겨우 스무 살에 아빠를 위해 음식까지 가려먹는 아들이 너무 대견스럽더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나까지 숙연해졌다.
  의사는 원래 토끼의 간을 60%만 떼어 주기로 했었지만, 간이 생각보다 작아서 70%나 떼어줘야 했고, 예정보다 많은 양을 떼어낸 게 토끼에게 무리였던지 수술 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자, 용왕과 거북이는 수술 전보다 더 애를 태웠단다.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토끼는 눈을 떴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용왕님도 토끼도 결과가 아주 좋았단다. 그런데 큰일을 겪고 난 요한이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한 농담의 수위였단다.
  간을 주면 사주기로 했던 최신형 노트북을 안 사주면 내 간을 다시 가져갈 거라는 둥,
  “아빠 간은 내꺼니까 곱게 잘 써먹고, 앞으로 내한테 잘 안 하면 도로 찾아간데이.”
  이쯤 되면 능청도 이런 능청이 없다 싶었단다.
  수술 전날, 병원 침대에 오른 요한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던 아빠는 지금이라도 두려우면 꼭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단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와서, 그저 당신이 나를 낳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언제나 내리사랑이라고만 들어왔던 것이 그렇게 흐뭇한 역사랑도 있구나 싶어 친구의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예뻐 보이던지. 나에게는 철없게만 느껴지던 아이가 부쩍 성장한 어른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일까. 당연히 베풀 사랑인 줄 알면서도, 그 도리는 절감하면서도 누구나 실천에 필요한 담대한 결단과 용기는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 곧 다시 열리는 이 봄에는 우리도 감동 하나씩을 준비하여 가까운 이들에게 예쁜 선물로 나누어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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