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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남은 삶의 동반자(최명남)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9 오전 9:59:16

조회수 2099

게시물 내용
제목 내 남은 삶의 동반자(최명남)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9 오전 9:59:16 (조회 : 2099)
내 남은 삶의 동반자
 
  본지가 11월에 시행한 점자새소식 40주년 이벤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최명남(주부)
 
  “할머니? 초성이 뭐야?”
  손녀가 묻는다. 얘가 생뚱맞게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보았다.
  “여기 종성은 또 뭐야?” 하고 묻는 아이를 향해 나는 퉁명스레 말한다.
  “. 오늘따라 웬 관심?”
  나의 이런 모양새가 우스웠던지 아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여기 쓰여 있어.” 하고 내 손에 책을 쥐여 준다.
  내가 조금 전에 읽은 점자 소식지였다. 뭔가 치밀어 오르는 씁쓸함에 점자 일람표를 뚫어져라 쏘아 본다. 간단하게 한 줄만 점자 표기였대도 여태껏 모르지 않았을 텐데... 께름칙한 기분이 왠지 우롱당한 느낌이다.
  이 소식지를 구독하는 사람 중 비단 나 한사람뿐 이었을까?’ 생각해본다. 무려 십여 년을 한 점 한 점 나름 꼼꼼하게 읽었다고 자부해 왔었다. 하지만 가끔은 앞장 첫머리에 점자 일람표를 표기해 주어도 좋을 텐데...하고 생각했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겉표지에 인쇄가 돼 있는 줄 모른 채 말이다.
  아이는 겉표지 글자들을 내 손으로 짚어가며 또박, 또박 읽어준다. 앞면은 점자새소식. 그리고 뒷면에 초성, 종성... 순간 꼭꼭 숨어있다 들켜버린 아이처럼 수런수런 글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여섯 개의 점으로 글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의외로 얌전하게 앉아서 듣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 또박 읽어준다. 앞면은 점자새소식. 그리고 뒷면에 초성, 종성... 순간 꼭꼭 숨어있다 들켜버린 아이처럼 수런수런 글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여섯 개의 점으로 글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의외로 얌전하게 앉아서 듣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아아, 알았다. 알았어.” 하며,
  “모음은 아, , , ...” 하고 주절대다 말고,
  “약어는 또 뭐야?” 하고 아양스레 묻는다.
  “. 점을 줄여서 쉽고 편하게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글.” 이라고 대답하자,
  “에이, 점자가 어렵다더니 쉽네 뭐.”
  아이가 책을 들고 신둥신둥 웃어가며 말한다.
  “‘는 점이 나란히 세 개, 그래서 사. 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으니까 이 된다.” 그러면,
  “옹은 쌍둥이야. 쌍둥이.” 하고 깔깔댄다.
  아이는 퍼즐 맞추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신이 나서 쉴 새 없이 조잘대더니,
  “할머니. 이것 좀 봐. 점이 팔 하나만 들고 워워 하네. 발을 벌리니까 와와.”
  재미있다. ‘자는 더 재미있는 모양 같다는 기발한 이론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와아. 내 손녀 최고다.”
  아이의 놀라운 재치와 상상에 헤벌쭉 벌어진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오래도록 이 아이가 지금처럼 밝은 웃음을 가진 사람, 이름만 들어도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주길 염원하면서. 내 마음은 맑아진다. 밤새 내리던 비가 멎은 아침처럼, 시원하게 눈앞을 흘러간다.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시련과 싸워가며 쓴맛도 겪어야 했던 지난날들이...
  인생 참 덧없다. 칭얼대는 아기를 등에 업고 동동거렸던 갓난쟁이, 그 아이가 어느새 열 살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이 녹아든 세월을 붙잡고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세상을 다 얻은 만큼이나 행복하다. 한낮의 햇살이 방안 가득 내려앉는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힘들게 배운 한 점 한 점은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요, 내 남은 삶의 동반자로 오늘도 가을빛 곱게 물든 점을 손끝으로 만져가며 점자 소식지를 읽어간다. 내게 남은 예쁜 삶이 되고자... 그래도 웃음이 가득 담겨 있으면 하고 바란다. 소소해도 좋다. 아이와, 가족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한 줄의 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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