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업, 내 그림자조차 떼어낼 때...
윤서향(삼선중학교 교사)
본 글의 주제는 ‘좋은 수업에 관한 성찰’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잘 가르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을 것이고 좋은 수업을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업을 좋은 수업이라 하는가?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우리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그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수업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교사생활 첫 해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구상하고 시행한 수업을 토대로 이러한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이 글이 앞으로 교단에 설 후배 교사들 특히 시각장애를 지닌 교사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로 다가갔으면 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이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이 글이 때로는 냉철한 현실 분석의 장이 되고 향후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필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오전 9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늘 듣는 것임에도 그때마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한다. 교실 문을 열고 학생들 앞에 서는 매 순간 다짐한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지. 오늘은 어제보다 적어도 1% 정도는 개선하는 수업을 해야지. 그리고 학생들의 출결 사항 및 학습준비 상황을 확인한 후 이전 차시 수업내용을 아주 간략히 전달하고, 본 차시 학습목표 역시 간략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내 수업의 도입 단계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도입 시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입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기에 지양해야 한다. 또한 학습목표나 주요 내용의 핵심을 전달하는 단계이기에 최대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도입을 마치면 이번 시간에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문법, 교과서 내용 등을 말로써 가르쳐 주는데, 여기까지가 ‘교사’로서 나의 역할이다. 말로써 가르친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나는 말을 최대한 아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을 지목하거나 번호를 뽑아 해당 번호의 학생에게 파상적으로 질문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줄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에 더 몰입하게 하고 집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후 남은 시간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모둠별 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활동인지에 관한 짧은 설명만 마친 뒤 나는 학생들을 지켜본다. 이 시점부터 나는 ‘교사’가 아니라 ‘조력자’가 된다.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한 명의 학생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교실을 돌며 각 모둠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도와주고 있다. 나는 교과서 부분 중 듣기, 어휘 학습, 본문은 대부분 모둠별 활동으로 진행한다. 그 전에 교과서로 주요 내용을 다 함께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다. 모둠별 활동만으로 수업을 이어갈 수는 없기에 중간 중간 교과서 진도를 빠짐없이 끼워 넣어 가르친다. 모둠 활동을 마치면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공유하도록 한다. 각 활동을 설계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지만, 그것을 실행하고 결과물을 내는 것은 학생들 몫이다. 언젠가 모둠 활동을 설계하는 것 자체도 학생들이 하도록 하는 것이 교사로서 나의 목표이다. 좋은 수업을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요소가 여기에 있다. 좋은 수업은 학생이 중심에 있는 수업, 교사는 학생을 조력할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모둠 활동을 함으로써 학생들은 스스로 수업의 주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경청·수렴하고 그렇게 모아진 의견을 그림이나 글로써 표현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은 협동심, 배려심,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현하는 법, 급우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모둠 활동의 종류와 방법은 그 활동을 통하여 학습할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그간 진행한 수많은 수업 중 어휘학습 시 활용한 ‘큐브 사전’이 기억에 남는다. 이 활동 이전에 학생들은 학습지를 이용하여 주요 어휘와 뜻을 익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활동이 중심이 되더라도 활동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활동 시 나의 역할은 단지 모둠별로 큐브 하나와 알파벳 스티커 한 장씩을 주는 것이었다. 각 모둠별로 흐트러진 큐브를 맞추고, 알파벳 스티커를 이용하여 모둠원들이 선택한 가장 중요한 어휘 6개를 큐브의 각 면에 붙이면 활동 종료. 큐브를 다른 모둠과 교환해 보며 학생들은 다른 모둠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각 모둠의 큐브에 붙은 어휘를 그림이나 몸짓으로 표현하여 다른 모둠에게 문제로 제시할 수도 있다.
위 활동 진행시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그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의 두 번째 필수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그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찾아내어 영어 학습과 결합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교사의 몫이다. 물론 때로는 힘들고 어렵다. 나 같은 시각장애 교사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표정 대신 말로써 그들의 기호와 취향, 학습 스타일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질문한다.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 어떤 것을 할 때 좋아?’ 매번 그렇게 질문하고 학생의 답변 속에서 영어수업 방법을 찾는 일은 때로 많이 어렵고 힘들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수업에 적용할지 생각하고 실제 하나의 수업 모델로 탄생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어찌 쉽고 즐겁기만 할까. 그러나 한 번만 해보면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단박에 녹여줄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어휘를 학습하는 주체는 학생들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학생들이 재미있어 하는 방법으로 학습을 유도했을 때의 기대효과는 교사가 말로써 혹은 다른 일방적인 방법으로 설명했을 때의 배가 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수업을 위해 나는 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조차도. 그것이 내게 어두운 그림자이고 아쉬운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학생들과는 무관한 사실이다. 냉정하다! 그러나 그 냉혹함이 현실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과 학생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학습 시 시각을 많이 활용하고 그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내가 수업 시 가장 편하게 내가 아는 것들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언어이다.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자료를 활용하기 보다는 말로써 전달할 때 나는 가장 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나 한 사람만 편한 방법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수업은 학생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내 교수법이 크게 변해야 한다는 것을 2 년차였던 지난해부터 느꼈다. 교사가 편한 대신 학생들이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한 일 아니겠는가? 설령 학생들의 결과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큐브를 제대로 맞추었는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을 향한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다 맞추었다고 가져오면 맞춘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림으로 어휘를 표현하여 다른 그룹에게 문제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학생들이 칠판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 다들 잘 그리고, 맞히는 아이들도 꽤 잘 맞힌다. 수업 중 내 말이 길어지다 보면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것이 변하여 학생들이 긴 시간 설명을 들으면서도 거기에 몰입하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 중학생에게 대학생들처럼 집중하기를 요구하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한 사람인 내가 최대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수업하는 것이 당연하다. 볼 수 없다는 그 그림자조차 떼어내려 노력하면서. 그것조차 초월하면서 연구하고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믿으면서 좀 더 재미있는 교수법을 개발하고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 현재도 앞으로도 나의 일임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임용될 시각장애 교사들이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언제나 학생 참여 중심적이고 소통 지향적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노력하는 시간들이 쌓이면 언젠가 우리도 학생들에게 ‘수업이 참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 날도 올 것이고 수업을 통하여 학생들과 영혼이 교감한다는 것을 느끼며 교사로서 보람을 찾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교사들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