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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포항 지진의 엉뚱한 소란(조희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2-29 오전 10:02:28

조회수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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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포항 지진의 엉뚱한 소란(조희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2-29 오전 10:02:28 (조회 : 2521)

포항 지진의 엉뚱한 소란

조희태(소설가)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진도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벽이 갈라지고 아파트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고 부상자가 100명에 육박했다. 이재민도 2,000명 가까이 발생했다. 이런 재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내진 대비도 미미해 피해가 컸고 소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소란한 것은 의외로 학교 쓰레기장이었고, 수험생 마음이었다. 수능 예비 소집 후 수험 서적을 오물처럼 쓰레기장에 버렸다. 그런데 수능이 16일에서 23일로 일주일 미뤄지자 자기 책을 찾느라고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시험 열풍이지 공부 열풍은 결코 아니다. 11월 중순쯤 수능이 끝난 후의 고3 교실의 스산함, 12월 말쯤 고교입시가 끝난 후의 중3 교실의 어수선함이 그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금값을 주고 산 책이 공부이고 학문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읽고 또 읽으며 밑줄 없는 부분도 새겨 읽으며 그것을 알게 된 후 그것을 좋아하며 그것에 흠뻑 빠지는 ‘법열(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와 같은 묘미와 쾌감에 마음이 쏠리어 취하다시피 되는 기쁨)’을 가져야 하는데, 그 소중한 책을 시험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입시가 끝나면 오물처럼 생각하여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이다.
  ‘지지후호지, 호지후낙지’ 즉 ‘그것을 알고 난 후 좋아하고, 좋아하고 난 후 즐긴다’라는 학문의 묘미를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모두 놓치고 있다. 배우는 학생은 아직 철이 덜 들어 그런다 치더라도 가르치는 자는 이걸 환히 알면서도 세속을 좇느라 도외시하고 있다.
  그 주범이 바로 소위 ‘스카이(sky)’ 대학이고, 명문고 운운하는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 과학고다. 이런 특성화 고등학교가 그 목적은 안중하지 아니하고 의학계 등 스카이 대학만 좇느라 교과서는 소홀히 하고 소위 예상문제집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공부는 사라지고 시험만 있는 실정이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평창올림픽에 러시아가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메달에 혈안이 된 러시아가 국가적 규모로 ‘도핑’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흥분제를 먹거나 근육강화제 주사를 맞으면 선수들의 기록이 현저히 좋아지나 그 부작용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약물 투여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비밀리에 이걸 꾀하였다가 도핑검사에서 들통이 난 것이다.
  스포츠에서 도핑이 선수의 신체를 망가지게 하며 스포츠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것처럼 각종 입시에서 소위 족집게라는 예상 문제집이 그러하다. 중3 교실이나 고3 교실에서 교과서를 제쳐 놓고 문제집에 열을 쏟는 것은 그 해악이 도핑보다 더 크리라 생각된다.
  ‘학우등사’해야 할 성균관 생도들이 예상문제집만으로 과거시험 준비에 급급함에 세종대왕은 그 폐해를 심히 우려하여 시험 문항이나 시험 답안이 예상 문제집을 표절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제도를 강화하였다. 유생들이 예상문제집에 빠지는 것을 규제할 수는 없으므로 시험제도에서 그걸 경계하게 한 것이다.
  세종 때의 인재로는 과학에 장영실, 음악에 박연, ‘농사직설’의 정초, 국방에 김종서·최윤덕이 있다. 그 밖에도 맹사성, 황희 정승,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 걸출한 학자들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상문제집의 폐해를 우려한 세종대왕의 안목의 필연이라 생각된다.
  지금의 교육에서 예상문제집보다 학문의 건강을 해롭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선행학습이다. 초등학생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우고, 중학생들이 미분, 적분 등을 학습하는 것은 국가가 제도적으로 규제하여야 하리라 생각된다. 스포츠에 도핑검사가 있는 것처럼 고교입시나 대학입시에서 선행 학습이나 소위 족집게 고액 과외를 받은 사실이 나중에라도 발견되면 합격을 취소하는 그런 과감한 규제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내진 설비가 잘된 일본이 진도 7.2 정도 지진에 별 피해가 없듯이 학문에도 이런 내진 설비를 한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이 시험 열풍에서 학문 열풍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는 노벨상 수상자도 머지않아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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