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가 안겨준 희망
최경천
2009년의 끝, 12월에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 중에 빛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내 인생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격랑 속에서 무력하게 떠밀리고 있었다.
“최경천 씨, 하나님을 아세요?” 집도의 박 과장이 퇴원 전날 밤에 찾아와 내 손을 잡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아니요” 어이없는 말이 이어졌다.
“그분을 꼭 믿어 보세요. 그분은 최경천님의 눈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놀라운 분이랍니다.”
‘이게 무슨 메추라기 달걀 낳는 소리야?’ 곱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간 후 다음날 예정된 시간에 퇴원을 했다.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던 애마를 볼 수도 없고, 더군다나 운전도 할 수 없는 슬픔을 처음 맞았다.
막상 퇴원해 집에 와보니 내 인생은 모든 것이 뒤틀려 있었다. 그래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며 며칠을 보냈다. 말없이 참아 주시던 어머니가 당신도 오죽이나 속이 상하셨으면 그랬을까마는 “그만저만 해라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래서 순간 결심이 섰다.
‘그래 죽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아무도 없는 시간을 택하여 21층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과 작별을 하려 할 때, ‘아들 결혼이나 시켜 놓고 갈까? 통장에 있는 잔고는 다 쓰고 가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 등등의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궁색하게 떠올랐다.
‘죽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미치고 나니 엉뚱하게도 퇴원 전날 박 과장이 해준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막 귀가하시던 어머니 손을 잡고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이고 나니 새삼스럽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기도 같지 않은 기도가 작게 흘러나왔다.
“하나님 난 당신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눈을 고쳐주실 수 있다길래 왔습니다. 내 눈을 다시 보게 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다음날은 기도가 조금 큰 소리로 나왔다. 셋째 날은 부끄럼도 사라지고 크게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런데 눈은 여전히 안 보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부터 생겨나는 작은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50년도 못 살고 죽은 사람도 많고, 날 때부터 못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한 50년 동안 잘 보고 잘 살았잖아’ 억울하게 생각 말자고 내 마음을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와 114에 전화를 걸었다.
“저는 실명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세요.”
은천동에 거주한 이유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을 소개받았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부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초재활 과정의 교육을 받으면서 동병상련의 시각장애 친구를 만나고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행복한 맹인이구나’ 하는 자조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인생의 변화를 강요하는 분수령을 만나게 되었다.
“최 형, 대학은 어디 나왔는교?”
항상 대답을 피하고 싶었던 질문을 친하게 지내던 이 씨가 돌발적으로 해 왔다. “대학을 못 나왔어요.” 죄지은 사람처럼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음 질문이 나오기 전 화장실을 핑계로 그 자리를 피했다.
고등학교를 보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리던 1976년 중학교 3학년, 그때가 떠올라 한참을 회상에 잠기다가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피하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을 잊어버리지도 않고 또 던진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서 다녔는교?” “고등학교도...!” 속말처럼 어렵게 뱉으면서 결심했다.
그래서 2010년 12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기초 재활반을 수료하고,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고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마침 그동안 강의한 내용이 테이프에 담겨있어서 지난 과정을 수십 번씩 듣고 2011년 4월 시험에 넉넉한 점수로 합격했다.
그동안 위축돼 가슴 속 깊은 곳에 구겨진 채 접혀있던 날개가 공작의 꽁지깃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은근히 누구라도 고등학교 어디 나왔느냐고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궁상맞은 생각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안마수련원을 2013년 2월에 수료하고 나면서 인생의 궤도를 바꿔야 하는 운명적 변화가 있었다. 그 무렵 지하철역에 당도하면 전에는 들리지 않던 신입생 모집 광고 CM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울사이버대 다니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단순하고 다소 촌티가 흐르는 CM은 지하철역을 벗어나도 ‘생기 팔팔’ 안마 침술원을 개업하여 일에 몰두하는 동안에도 인디언 추장의 귀걸이 장식처럼 여전히 귓불에 걸려서 1년여 동안 반복하여 울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불안의 색을 띠고 공작의 꽁지깃을 조금 가리고 있었지만 끝내는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운명을 즐기며 2014년 서울사이버대학교 ‘복지시설경영학과’에 입학을 했다.
사회복지학부에 시각장애인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묘한 승부욕을 자극했다. 마치 대학생이 안 되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잉여 인간으로 전락되었을 것처럼 심취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와 선배 앞에서 도발적으로 내뱉은 나의 발언이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그리고 한참 후에도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동문 숫자가 가장 많은 검정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서울사이버대학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공부하기에 최적화된 교육기관이 아니었으므로, 센스리더의 도움으로 정안인과 같은 콘텐츠를 소화하기에는 조금 벅찼다. 그래도 아주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여덟 번의 등록금을 꼭 한번 내 돈으로 납부하고, 국가장학금의 수혜를 입어 4학년 2학기를 맞았다.
지금은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역학을 공부하고 있다. 틈틈이 시를 쓰며 내 인생을 반추해 보는 고상한 취미도 생겼다. 지금까지 쓴 110여 편의 자작시 중에 6편을 추려 응모한 중앙일보 창사기념 ‘신인 문학상’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남은 반생의 길이 어떻게 변하고, 무엇을 요구하는 삶이 기다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한다. ‘나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1961년생의 빛나는 청춘’이라는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학력 콤플렉스를 생활의 밑면에 깔고 항상 주눅 들고 위축된 삶을 살았다. 지금은 비록 두 눈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자신감이 충만하고 의욕이 샘솟는다. 더욱 소중한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중이라고 부르짖는다. 시각장애가 안겨준 보상이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명명한다.
“최경천 씨, 하나님을 아세요?” 집도의 박 과장이 퇴원 전날 밤에 찾아와 내 손을 잡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아니요” 어이없는 말이 이어졌다.
“그분을 꼭 믿어 보세요. 그분은 최경천님의 눈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놀라운 분이랍니다.”
‘이게 무슨 메추라기 달걀 낳는 소리야?’ 곱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간 후 다음날 예정된 시간에 퇴원을 했다.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던 애마를 볼 수도 없고, 더군다나 운전도 할 수 없는 슬픔을 처음 맞았다.
막상 퇴원해 집에 와보니 내 인생은 모든 것이 뒤틀려 있었다. 그래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며 며칠을 보냈다. 말없이 참아 주시던 어머니가 당신도 오죽이나 속이 상하셨으면 그랬을까마는 “그만저만 해라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래서 순간 결심이 섰다.
‘그래 죽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아무도 없는 시간을 택하여 21층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과 작별을 하려 할 때, ‘아들 결혼이나 시켜 놓고 갈까? 통장에 있는 잔고는 다 쓰고 가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 등등의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궁색하게 떠올랐다.
‘죽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미치고 나니 엉뚱하게도 퇴원 전날 박 과장이 해준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막 귀가하시던 어머니 손을 잡고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이고 나니 새삼스럽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기도 같지 않은 기도가 작게 흘러나왔다.
“하나님 난 당신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눈을 고쳐주실 수 있다길래 왔습니다. 내 눈을 다시 보게 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다음날은 기도가 조금 큰 소리로 나왔다. 셋째 날은 부끄럼도 사라지고 크게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런데 눈은 여전히 안 보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부터 생겨나는 작은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50년도 못 살고 죽은 사람도 많고, 날 때부터 못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한 50년 동안 잘 보고 잘 살았잖아’ 억울하게 생각 말자고 내 마음을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와 114에 전화를 걸었다.
“저는 실명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세요.”
은천동에 거주한 이유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을 소개받았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부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초재활 과정의 교육을 받으면서 동병상련의 시각장애 친구를 만나고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행복한 맹인이구나’ 하는 자조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인생의 변화를 강요하는 분수령을 만나게 되었다.
“최 형, 대학은 어디 나왔는교?”
항상 대답을 피하고 싶었던 질문을 친하게 지내던 이 씨가 돌발적으로 해 왔다. “대학을 못 나왔어요.” 죄지은 사람처럼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음 질문이 나오기 전 화장실을 핑계로 그 자리를 피했다.
고등학교를 보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리던 1976년 중학교 3학년, 그때가 떠올라 한참을 회상에 잠기다가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피하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을 잊어버리지도 않고 또 던진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서 다녔는교?” “고등학교도...!” 속말처럼 어렵게 뱉으면서 결심했다.
그래서 2010년 12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기초 재활반을 수료하고,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고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마침 그동안 강의한 내용이 테이프에 담겨있어서 지난 과정을 수십 번씩 듣고 2011년 4월 시험에 넉넉한 점수로 합격했다.
그동안 위축돼 가슴 속 깊은 곳에 구겨진 채 접혀있던 날개가 공작의 꽁지깃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은근히 누구라도 고등학교 어디 나왔느냐고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궁상맞은 생각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안마수련원을 2013년 2월에 수료하고 나면서 인생의 궤도를 바꿔야 하는 운명적 변화가 있었다. 그 무렵 지하철역에 당도하면 전에는 들리지 않던 신입생 모집 광고 CM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울사이버대 다니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단순하고 다소 촌티가 흐르는 CM은 지하철역을 벗어나도 ‘생기 팔팔’ 안마 침술원을 개업하여 일에 몰두하는 동안에도 인디언 추장의 귀걸이 장식처럼 여전히 귓불에 걸려서 1년여 동안 반복하여 울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불안의 색을 띠고 공작의 꽁지깃을 조금 가리고 있었지만 끝내는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운명을 즐기며 2014년 서울사이버대학교 ‘복지시설경영학과’에 입학을 했다.
사회복지학부에 시각장애인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묘한 승부욕을 자극했다. 마치 대학생이 안 되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잉여 인간으로 전락되었을 것처럼 심취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와 선배 앞에서 도발적으로 내뱉은 나의 발언이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그리고 한참 후에도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동문 숫자가 가장 많은 검정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서울사이버대학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공부하기에 최적화된 교육기관이 아니었으므로, 센스리더의 도움으로 정안인과 같은 콘텐츠를 소화하기에는 조금 벅찼다. 그래도 아주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여덟 번의 등록금을 꼭 한번 내 돈으로 납부하고, 국가장학금의 수혜를 입어 4학년 2학기를 맞았다.
지금은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역학을 공부하고 있다. 틈틈이 시를 쓰며 내 인생을 반추해 보는 고상한 취미도 생겼다. 지금까지 쓴 110여 편의 자작시 중에 6편을 추려 응모한 중앙일보 창사기념 ‘신인 문학상’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남은 반생의 길이 어떻게 변하고, 무엇을 요구하는 삶이 기다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한다. ‘나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1961년생의 빛나는 청춘’이라는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학력 콤플렉스를 생활의 밑면에 깔고 항상 주눅 들고 위축된 삶을 살았다. 지금은 비록 두 눈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자신감이 충만하고 의욕이 샘솟는다. 더욱 소중한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중이라고 부르짖는다. 시각장애가 안겨준 보상이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명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