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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사 새옹지마(전진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11 오후 6:17:33

조회수 2365

게시물 내용
제목 인생사 새옹지마(전진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11 오후 6:17:33 (조회 : 2365)
인생사 새옹지마
전진희(공무원)
  어느 퇴근길, 평소보다 앞 시간에 도착한 열차를 탈 수 있어 너무 신이 났다. 한 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여정이 예정된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빠른 열차를 타야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기에 열차 시간에 꽤나 예민하다. 그런데 오늘은 재수가 좋다. 집에 빨리 도착할 것이니까!
  열차에 타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흥겨운 음악을 재생하고, 눈을 감았다. 기분도 좋고 음악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서 이내 잠이 들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도착시간도 평소보다 일찍 다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도 몇 곡 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도착시간이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잠시 빼고 현재 지나고 있는 역을 확인하기 위해 방송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하철은 고요하기만 했다. 느낌상으로는 하차할 역에 도착할 시간인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르쇠를 연발하며 야속하게 하차해 버린다. 짧은 순간 이번 역이라는 느낌과 다음 역이라는 느낌이 교차하면서 나는 갈등에 휩싸였다. 결국 나의 선택은 이번에는 내리지 않는 쪽이었다.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정거장 뒤에 내려서 다시 되돌아오느라 평소 도착 시간보다 10분이나 늦었다. 좋았던 기분은 사라지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깟 방송 하나 때문에 내 퇴근길 여정이 어그러지다니! 모처럼 시간을 단축했다고 좋아했던 조금 전의 상황마저 우스워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쉬움을 끌어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웬 젊은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실례합니다. 근처에 사시나 봐요? 평소에 이 시간쯤에 오다가다 많이 뵈었어요.”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며, “네? 네”라며 조금 허둥댔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세요. 같은 방향인 것 같아서요. 저는 1번 출구 앞에 금호빌딩 뒤로 가거든요.”
  그녀가 말한 지점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앞 건물이었다.
  “네 좋습니다. 저희 집도 그 뒤 아파트라서요. 그럼 안내 좀 부탁하겠습니다.”
  가볍게 그녀의 팔을 잡으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나를 평소 지하철에서 자주 봤다는 이야기, 요즘 열대야로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는 이야기, 우리 동네 아파트가 재건축 중이라 먼지가 많아서 건강이 염려된다는 이야기 등등. 주민들끼리 나눌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역을 지나쳐 불쾌했던 기분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굵어졌다. 소나기였다. 국지성호우 예보를 듣기는 했지만, 퇴근길은 피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 우산이 없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근처 건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우리는 비를 피하는 동안에 소나기가 가끔씩 내려주면 기분이 좋더라는 이야기, 혼자 걸을 때 소나기가 내리면 어떻게 피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계속 만났던 사람처럼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야속한 비는 금세 잦아들었다. 우리는 다시 비에 젖은 거리로 나섰다. 서로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평소보다 많이 늦어졌다. 그러나 정거장을 지나친 것도 소나기를 만난 것도 억울하거나 불쾌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친절한 여성과의 데이트 기회도 생겼으니까 말이다.
  이동할 때, 종종 돌발변수가 나타나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겨 상쇄해준다. 어떤 상황이든 즐기면서 헤쳐나간다면, 핸디캡으로 겪는 소소한 불편도 하나의 재밋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담담하게 한발한발 정진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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