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식 한자점자를 고안하며
이승권(서울맹학교 교사)
예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이료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받는 것이야 교사에게 늘상 있는 일이지만 그 학생은 여느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질문의 골자는 현 침구 교과서에 운침술을 보면 ‘선연술’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틀린 용어 아니냐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이미 구 교과서까지 훑어본 후에 물은 것이다. 구 교과서에 ‘선염술’로 되어 있던 것이 현 교과서에 ‘선연술’로 되었으니 오탈자 아니냐는 뜻인데, 이는 한자를 잘 알지 못하면 답변하기가 까다로운 질문이다. 때마침 필자가 한자 연구에 매진하던 시기였던 터라 다행히 정확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었다.
구 교과서의 ‘선염술’은 돌 선자에 비틀 념(염)자를 쓰는데 ‘념’자를 파자해 보면 손수(재방변)자에 생각할 념자를 쓴다. 그러니 ‘선염술’은 손으로 비틀어 돌린다는 뜻이다. ‘선연술’ 역시 파자해 보면 돌 선자에 비틀 년(연)자를 쓰며 ‘년’자는 손수(재방변)자에 그러할 연자를 쓰므로, 그 뜻이 ‘선염술’과 매일반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선염술’과 ‘선연술’은 한자의 구성을 볼 때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어떤 자료를 참고하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한자어가 사용된 것이며, 이런 경우에는 구 용어를 괄호 속에 병기하는 것이 명료성을 높여 주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순우리말 사용이 장려되는가 싶더니 요즈음은 다시 국한문 혼용체로 전환되는 모양새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한자 교육이 부활된다고도 하고, 7차 개정 교과서에서 순우리말을 상당 부분 적용했던 이료교과서도 다시 국한문 혼용체로 가는 것을 보면 세상의 변화란 게 종잡을 길이 없다. 이런 변화는 아마 국제 정세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급부상하는 중국의 위상과도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시류의 변화야 어찌 되었든 우리 시각장애인은 동양철학과 동양의학 관련 직업에 종사해 오던 까닭에 한자를 자주 접할 수밖에 없다. 이료 용어가 모두 한자이기도 하거니와 그 기원이 된 한의학 관련 서적들 역시 한자로 기술되었음은 물론이다. 동양철학은 또 어떤가? 사서삼경의 하나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주역’을 비롯하여 자평명리, 적천수 등 많은 역서 또한 한자로 기술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시각장애인이 역학이든 이료이든 제대로 할라치면, 한자에 대한 지식 습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우리는 한자를 구현할 마땅한 수단이 없던 탓에 한글로 된 독음만으로 한자 서적을 접해야 했고, 그로 인해 일면적 해석과 과·오독의 사례가 빈번하였다.
일례로 이료 용어인 ‘묘청’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고양이 뒤통수 부위에서 나는 소리라고 풀이한 예가 있는데, 기실 이는 후두(목구멍 후, 머리 두)였던 한자의 훈을 후두(뒤 후, 머리 두)로 잘못 풀이한 과·오독의 사례이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인은 가장 한자를 많이 접하고 있음에도 가장 한자로부터 소외된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에 한자점자의 필요성을 인식한 선각자들이 옥편 찾는 방식을 도입하여 한자점자를 고안하였으나 실용화되지 못하였다.
문자의 3요소는 형과 성과 의이다. 우리가 문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소리가 약속된 기호에 뜻을 담아 표현하고 이해하는 과정인 것이다. 필자는 옥편 찾는 방식이 아닌 한자의 문자적 특성에 기반한 점자를 만들기 위해선 파자식 표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한자의 기원과 발전 과정 및 제자 원리를 면밀히 검토하여 후속 연구 끝에 파자식 한자점자인 '새한자'를 고안하였다. 한자가 얼핏 보아 아무 연계성 없이 제각각인 것 같아도 그 구조를 곰곰이 살펴 보면 한자가 발전되어 온 일관된 규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일관된 규칙에 기반을 두고 파자식 ‘새한자’는 고안되었다.
파자를 하면 한자가 금방 눈에 들어오고 그 의미가 선명해져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예를 들어 ‘형 곤’자를 파자해 보면 해 일자에 견줄 비자를 쓰는데, 태어난 해를 견주어 보면 형이 가려지는 셈이니 그 뜻이 짐작이 가는 것이다. 또한 ‘형 곤’자는 다른 한자와 결합하면서 많은 한자를 재생성한다. 곧 ‘형곤’자에다 ‘실 사’자가 붙으면 ‘띠 곤’, ‘구슬 옥’자가 붙으면 ‘옥돌 곤’, ‘나무 목’자가 붙으면 이료 용어의 ‘곤봉지’에서 나오는 ‘몽둥이 곤’이 된다. 그 외에도 ‘형 곤’자가 확장된 한자가 많지만 지면의 제약이 있으니 이만하기로 한다.
이처럼 파자를 하면 풍부한 상상력과 기억 능력이 길러지며 한자가 무척 쉽고 재미있게 외워진다. 무엇보다 파자는 한자의 본래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어 한자 활용 능력이 몰라보게 좋아질 뿐 아니라, 일반인과 소통이 가능하여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그 구조를 확인하여 시각장애인이 일반인을 가르쳐 줄 수도 있게 된다.
그간 한자 관련 문자가 없다 보니 배우는 사람이 없고,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가르치는 사람도 없어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왔다. 그저 소리와 뜻만을 단순 암기하자니 기억은 힘들었고 일면적 활용에 그쳐야만 했던 문자장애를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껏 우리는 쉽고 어렵고를 떠나 한자는 접근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지냈다. 언제까지 한자만 만나면 보는 사람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가? 이제 시각장애인도 한자로부터 소외받던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적성에 안 맞아서 안 하는 일은 있어도, 하고 싶은데 문자가 없어 못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부디 시각장애인에게 한자점자가 생겨 문자 장애를 극복하고 풍요로운 문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구 교과서의 ‘선염술’은 돌 선자에 비틀 념(염)자를 쓰는데 ‘념’자를 파자해 보면 손수(재방변)자에 생각할 념자를 쓴다. 그러니 ‘선염술’은 손으로 비틀어 돌린다는 뜻이다. ‘선연술’ 역시 파자해 보면 돌 선자에 비틀 년(연)자를 쓰며 ‘년’자는 손수(재방변)자에 그러할 연자를 쓰므로, 그 뜻이 ‘선염술’과 매일반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선염술’과 ‘선연술’은 한자의 구성을 볼 때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어떤 자료를 참고하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한자어가 사용된 것이며, 이런 경우에는 구 용어를 괄호 속에 병기하는 것이 명료성을 높여 주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순우리말 사용이 장려되는가 싶더니 요즈음은 다시 국한문 혼용체로 전환되는 모양새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한자 교육이 부활된다고도 하고, 7차 개정 교과서에서 순우리말을 상당 부분 적용했던 이료교과서도 다시 국한문 혼용체로 가는 것을 보면 세상의 변화란 게 종잡을 길이 없다. 이런 변화는 아마 국제 정세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급부상하는 중국의 위상과도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시류의 변화야 어찌 되었든 우리 시각장애인은 동양철학과 동양의학 관련 직업에 종사해 오던 까닭에 한자를 자주 접할 수밖에 없다. 이료 용어가 모두 한자이기도 하거니와 그 기원이 된 한의학 관련 서적들 역시 한자로 기술되었음은 물론이다. 동양철학은 또 어떤가? 사서삼경의 하나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주역’을 비롯하여 자평명리, 적천수 등 많은 역서 또한 한자로 기술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시각장애인이 역학이든 이료이든 제대로 할라치면, 한자에 대한 지식 습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우리는 한자를 구현할 마땅한 수단이 없던 탓에 한글로 된 독음만으로 한자 서적을 접해야 했고, 그로 인해 일면적 해석과 과·오독의 사례가 빈번하였다.
일례로 이료 용어인 ‘묘청’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고양이 뒤통수 부위에서 나는 소리라고 풀이한 예가 있는데, 기실 이는 후두(목구멍 후, 머리 두)였던 한자의 훈을 후두(뒤 후, 머리 두)로 잘못 풀이한 과·오독의 사례이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인은 가장 한자를 많이 접하고 있음에도 가장 한자로부터 소외된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에 한자점자의 필요성을 인식한 선각자들이 옥편 찾는 방식을 도입하여 한자점자를 고안하였으나 실용화되지 못하였다.
문자의 3요소는 형과 성과 의이다. 우리가 문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소리가 약속된 기호에 뜻을 담아 표현하고 이해하는 과정인 것이다. 필자는 옥편 찾는 방식이 아닌 한자의 문자적 특성에 기반한 점자를 만들기 위해선 파자식 표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한자의 기원과 발전 과정 및 제자 원리를 면밀히 검토하여 후속 연구 끝에 파자식 한자점자인 '새한자'를 고안하였다. 한자가 얼핏 보아 아무 연계성 없이 제각각인 것 같아도 그 구조를 곰곰이 살펴 보면 한자가 발전되어 온 일관된 규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일관된 규칙에 기반을 두고 파자식 ‘새한자’는 고안되었다.
파자를 하면 한자가 금방 눈에 들어오고 그 의미가 선명해져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예를 들어 ‘형 곤’자를 파자해 보면 해 일자에 견줄 비자를 쓰는데, 태어난 해를 견주어 보면 형이 가려지는 셈이니 그 뜻이 짐작이 가는 것이다. 또한 ‘형 곤’자는 다른 한자와 결합하면서 많은 한자를 재생성한다. 곧 ‘형곤’자에다 ‘실 사’자가 붙으면 ‘띠 곤’, ‘구슬 옥’자가 붙으면 ‘옥돌 곤’, ‘나무 목’자가 붙으면 이료 용어의 ‘곤봉지’에서 나오는 ‘몽둥이 곤’이 된다. 그 외에도 ‘형 곤’자가 확장된 한자가 많지만 지면의 제약이 있으니 이만하기로 한다.
이처럼 파자를 하면 풍부한 상상력과 기억 능력이 길러지며 한자가 무척 쉽고 재미있게 외워진다. 무엇보다 파자는 한자의 본래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어 한자 활용 능력이 몰라보게 좋아질 뿐 아니라, 일반인과 소통이 가능하여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그 구조를 확인하여 시각장애인이 일반인을 가르쳐 줄 수도 있게 된다.
그간 한자 관련 문자가 없다 보니 배우는 사람이 없고,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가르치는 사람도 없어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왔다. 그저 소리와 뜻만을 단순 암기하자니 기억은 힘들었고 일면적 활용에 그쳐야만 했던 문자장애를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껏 우리는 쉽고 어렵고를 떠나 한자는 접근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지냈다. 언제까지 한자만 만나면 보는 사람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가? 이제 시각장애인도 한자로부터 소외받던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적성에 안 맞아서 안 하는 일은 있어도, 하고 싶은데 문자가 없어 못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부디 시각장애인에게 한자점자가 생겨 문자 장애를 극복하고 풍요로운 문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