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문학
천병은(소설가)
퍼런 책보자기를 옆구리에 낀 머슴애는 국민학교 정문을 뒤로하고 늘 그렇듯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자그마한 상점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늘어선 길을 걷는 머슴애의 두 눈은 항상 바빴다. 쇼윈도에 걸려 있는 멋진 신사복을 보며 그걸 걸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머슴애는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찐빵에 눈이 꽂힐 때는 목에서 꼴깍하는 소리가 났다. 찐빵 위에 날름 앉아 있는 파리가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불그스레한 병에 담긴 무슨 무슨 맥주라고 쓰여진 고놈은 어떤 맛일지가 궁금했고, 생김새도 다양한 시계들은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머슴애의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고 놔주지 않은 곳은 만화방이었다. 아예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붙이고 서서 어제와 다른 제목이 있는지를 빠르게 탐색해 나가는 머슴애의 눈에서는 빛이 나는 듯했다. 어쩌다 동전이라도 생긴 날엔 어김없이 만화방으로 달음질쳤고, 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머슴애의 거동은 말할 것도 없이 들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장면들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성큼 지면으로 걸어 들어가 만화 속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어 맘껏 활개 치기를 머슴애는 더 즐겨했다. 급기야 공부하라고 사 준 공책은 종종 뜯겨져 만화로 둔갑해 친구들한테 나눠지기가 일쑤였고,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의 찬사를 듣는 맛에 머슴애는 공책 두께가 얇아져 가는 것쯤 안중에도 없었다.
무더운 여름 그늘진 담장 아래 가마니를 길게 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슨 얘긴지 재미나게 주고받는 걸 보면 머슴애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가마니 귀퉁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를 즐겨했다.
까마득히 먼 창공으로 연을 날리면서도 머슴애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허공에서 바라다보이는 세상, 그러니까 바다랑 산, 그리고 조각조각 바다에 뿌려진 섬들, 다닥다닥 달라붙은 건물들에다 그사이 사이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길들, 머슴애는 까마득한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연을 통해 세상을 굽어보았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진도 고모 댁을 가는 여객선 위에서 본 작은 섬, 그때 그 섬에서 보았던 아주 조그마한 하얀 집은 나이 든 머슴애의 기억 속에 지금까지도 동화처럼 남아 있다. 그렇게 작은 섬에도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렇게 작은 집에 사는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언제, 어떻게 저기까지 와 살게 되었을까 궁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쉴새 없이 갯가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거뭇거뭇하게 이끼를 뒤집어쓴 갯바위들에다, 오두막을 둘러싼 산과 거기에 뿌리를 내려박고 자라는 나무, 풀, 꽃들 그리고 새들뿐인데 오두막에 사는 그 누군가는 하루를 뭘 하면서 살아갈까 생각하며 머슴애는 오래도록 멀어져 가는 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벗 삼아 머슴애의 일과는 시작되고 저물었다. 어렵사리 손에 쥔 그 물건은 말로 형언할 길 없을 만큼의 귀중품 1호였다. 심야 방송을 들으며 눈물도 찔끔 흘리기도 했고 목포 인근 낙도며 시골 소녀들과 펜팔이란 것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펜팔이란 답장을 절대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잘 써야 했다. 한 통의 편지가 완성되려면 잘 써야 했다. 잘 써야 한다는 건 편지를 받아 볼 상대의 마음에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하기까지 구겨 버린 편지지의 수는 속상한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해 가면서 구겨진 편지지의 수는 줄어들었고 편지 한 통에 답장 또한 한 통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이 스무 살, 머슴애는 그해 10월 수술 후에 시력을 잃었고 절망과 자포자기로 죽음을 향해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지만 매정한 그놈은 내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현실이, 아니 다시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머슴애의 가슴을 북북 찢어발겼다.
좌절 그 암울한 시간 2년을 건너 시각장애인 재활기관을 소개받은 머슴애는 한달음에 상경했고, 해부학, 안마, 침술과 함께 점자라는 생소한 글씨를 배우게 되면서 다시금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뿐만 아니었다.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나게 되면서 기쁨의 키 높이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생물학적 눈을 소유한 정안인한테 견주자면 조금 못 미친다 느껴지겠지만, 그나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동 글월을 맘껏 쏟아놓게 되었으니 마음 기쁘기가 한량없었다.
2005년 3월,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글쓰기에 달려들긴 했지만, 단편소설 한 편 씀에 있어서도 종종 진액을 짜내는 듯한 산통을 경험하곤 한다. 세상 뭣 하나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 있을까마는, 작품이란 이름의 옥동자를 분만하기 위한 고통이랄까 그건 충분히 감수할 만큼의 값어치 있는 행위라 여겨진다.
드넓은 황무지에다 내가 살고 여행자가 쉬어 갈 집을 짓는 심경으로 작품을 쓴다. 황량한 그곳에서 나무를 캐내고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돌을 주워 모아 진흙과 함께 짓이겨 반죽을 해 벽을 쌓아 올린다. 전신은 땀으로 젖어 들고 손은 거칠어 가고 시간은 발밑에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로 남는다.
얼른 봐선 그저 황량한 대지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곳엔 따가운 햇살과 비바람을 막아 줄 초막 지을 자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러기에 문학이란 황무지에 집짓기라고 감히 말해 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머슴애의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고 놔주지 않은 곳은 만화방이었다. 아예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붙이고 서서 어제와 다른 제목이 있는지를 빠르게 탐색해 나가는 머슴애의 눈에서는 빛이 나는 듯했다. 어쩌다 동전이라도 생긴 날엔 어김없이 만화방으로 달음질쳤고, 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머슴애의 거동은 말할 것도 없이 들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장면들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성큼 지면으로 걸어 들어가 만화 속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어 맘껏 활개 치기를 머슴애는 더 즐겨했다. 급기야 공부하라고 사 준 공책은 종종 뜯겨져 만화로 둔갑해 친구들한테 나눠지기가 일쑤였고,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의 찬사를 듣는 맛에 머슴애는 공책 두께가 얇아져 가는 것쯤 안중에도 없었다.
무더운 여름 그늘진 담장 아래 가마니를 길게 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슨 얘긴지 재미나게 주고받는 걸 보면 머슴애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가마니 귀퉁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를 즐겨했다.
까마득히 먼 창공으로 연을 날리면서도 머슴애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허공에서 바라다보이는 세상, 그러니까 바다랑 산, 그리고 조각조각 바다에 뿌려진 섬들, 다닥다닥 달라붙은 건물들에다 그사이 사이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길들, 머슴애는 까마득한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연을 통해 세상을 굽어보았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진도 고모 댁을 가는 여객선 위에서 본 작은 섬, 그때 그 섬에서 보았던 아주 조그마한 하얀 집은 나이 든 머슴애의 기억 속에 지금까지도 동화처럼 남아 있다. 그렇게 작은 섬에도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렇게 작은 집에 사는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언제, 어떻게 저기까지 와 살게 되었을까 궁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쉴새 없이 갯가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거뭇거뭇하게 이끼를 뒤집어쓴 갯바위들에다, 오두막을 둘러싼 산과 거기에 뿌리를 내려박고 자라는 나무, 풀, 꽃들 그리고 새들뿐인데 오두막에 사는 그 누군가는 하루를 뭘 하면서 살아갈까 생각하며 머슴애는 오래도록 멀어져 가는 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벗 삼아 머슴애의 일과는 시작되고 저물었다. 어렵사리 손에 쥔 그 물건은 말로 형언할 길 없을 만큼의 귀중품 1호였다. 심야 방송을 들으며 눈물도 찔끔 흘리기도 했고 목포 인근 낙도며 시골 소녀들과 펜팔이란 것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펜팔이란 답장을 절대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잘 써야 했다. 한 통의 편지가 완성되려면 잘 써야 했다. 잘 써야 한다는 건 편지를 받아 볼 상대의 마음에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하기까지 구겨 버린 편지지의 수는 속상한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해 가면서 구겨진 편지지의 수는 줄어들었고 편지 한 통에 답장 또한 한 통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이 스무 살, 머슴애는 그해 10월 수술 후에 시력을 잃었고 절망과 자포자기로 죽음을 향해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지만 매정한 그놈은 내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현실이, 아니 다시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머슴애의 가슴을 북북 찢어발겼다.
좌절 그 암울한 시간 2년을 건너 시각장애인 재활기관을 소개받은 머슴애는 한달음에 상경했고, 해부학, 안마, 침술과 함께 점자라는 생소한 글씨를 배우게 되면서 다시금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뿐만 아니었다.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나게 되면서 기쁨의 키 높이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생물학적 눈을 소유한 정안인한테 견주자면 조금 못 미친다 느껴지겠지만, 그나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동 글월을 맘껏 쏟아놓게 되었으니 마음 기쁘기가 한량없었다.
2005년 3월,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글쓰기에 달려들긴 했지만, 단편소설 한 편 씀에 있어서도 종종 진액을 짜내는 듯한 산통을 경험하곤 한다. 세상 뭣 하나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 있을까마는, 작품이란 이름의 옥동자를 분만하기 위한 고통이랄까 그건 충분히 감수할 만큼의 값어치 있는 행위라 여겨진다.
드넓은 황무지에다 내가 살고 여행자가 쉬어 갈 집을 짓는 심경으로 작품을 쓴다. 황량한 그곳에서 나무를 캐내고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돌을 주워 모아 진흙과 함께 짓이겨 반죽을 해 벽을 쌓아 올린다. 전신은 땀으로 젖어 들고 손은 거칠어 가고 시간은 발밑에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로 남는다.
얼른 봐선 그저 황량한 대지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곳엔 따가운 햇살과 비바람을 막아 줄 초막 지을 자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러기에 문학이란 황무지에 집짓기라고 감히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