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윤영식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영원에게 아내는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아내가 떠나가고 직장마저 잃은 그는 절망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많았던 그는, 무료급식소에서 배급하는 한 끼 식사로 주린 배를 채우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날도 정처 없이 헤매던 그는 밤이 이슥해서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기약 없는 내일에 한숨 지며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온 그를 웬 노인이 가로막았다.
노인은 구겨지고 낡아빠진 신문을 내밀며 말했다.
“젊은 양반! 이 신문은 내일 신문이라네. 이 신문에는 내일 있을 경마 결과가 들어 있지. 경마장에 가서 여기에 적힌 번호에 투자를 하면 대박 날 걸세. 신문값은 만 원이야.”
‘내일 신문이라니? 신문값이 만 원이라니? 이 양반이 더위를 먹고 돌았나?’
영원은 속으로 별 미친 노인을 다 본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지갑을 꺼냈다. 노인의 예리한 안광에 겁을 먹고, 비릿한 미소에 홀린 영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만 원을 건네주고 신문을 받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털썩! 소리가 나게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신문을 펼쳤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까막눈은 아니지만 깜깜해서 글을 읽을 수 없는 그의 눈에 경마 결과표가 아주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몇 번을 확인했지만 날짜는 분명히 내일 날짜였고, 모든 경마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불안해진 그는 혹시라도 누가 와서 신문을 빼앗을까 잠긴 문에 안전고리까지 걸었다. 하룻밤을 천추같이 보낸 그는 장롱 속 깊이 묻어두었던 최후의 비상금을 갈무리해 과천으로 달려갔다. 서울대공원을 미아처럼 헤매던 그는 시간에 맞춰서 경마장으로 갔다. 경마장은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도 그들 틈에 끼어들어서 신문에 있는 번호에 비상금 전액을 걸었다.
신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 경기 한 경기 끝날 때마다 상금 전액을 재투자했다. 경마가 완전히 끝났을 때 그의 앞에는 5만 원짜리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아주 큰 가방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수십억 원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어렵게 정신을 차린 그는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경마로 패가망신한 그들의 눈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처럼 번뜩였고, 당장이라도 그를 해치고 돈을 뺏을 기세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얼른 가방을 열고 돈을 휙휙! 뿌렸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돈을 사방으로 휘날렸고 그들은 돈을 주우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웠다.
그 틈에 현장을 빠져나온 그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호송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그의 머릿속에는 예쁜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잔잔한 호수가 있는 집에서 이 세상 최고의 미인과 아들딸 많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그는 푹신한 뒷좌석에 몸을 묻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고마운 신문을 펼쳤다. 콧노래를 부르며 신문을 뒤적거리던 그는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오늘 오후 7시 경찰차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윤영원 씨 심장마비로 사망.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과천경마장에서 수십억 원을 따고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귀가하던 중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더니 손을 쓸 새도 없이 사망했다.’
기겁한 그는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저 많은 돈을 한 푼도 못써보고 죽다니 분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살아 있을 때 얘기지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무슨 소용이랴?
살고 싶은 그는 안간힘을 쓰면서 경찰한테 차에서 내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경찰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경찰이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삿갓을 쓴 그는 저승사자였다.
저승사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너처럼 일은 안 하고 헛된 꿈에 사로잡혀 밥만 축내는 인간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해. 넌 지금 염라대왕한테 가는 거야.”
저승사자가 내게 손을 뻗는 그때, 주머니 속에 있는 와인 핸드폰이 친절하게 시간을 가르쳐주었다.
“자기야! 7시야. 일어나.”
그날도 정처 없이 헤매던 그는 밤이 이슥해서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기약 없는 내일에 한숨 지며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온 그를 웬 노인이 가로막았다.
노인은 구겨지고 낡아빠진 신문을 내밀며 말했다.
“젊은 양반! 이 신문은 내일 신문이라네. 이 신문에는 내일 있을 경마 결과가 들어 있지. 경마장에 가서 여기에 적힌 번호에 투자를 하면 대박 날 걸세. 신문값은 만 원이야.”
‘내일 신문이라니? 신문값이 만 원이라니? 이 양반이 더위를 먹고 돌았나?’
영원은 속으로 별 미친 노인을 다 본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지갑을 꺼냈다. 노인의 예리한 안광에 겁을 먹고, 비릿한 미소에 홀린 영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만 원을 건네주고 신문을 받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털썩! 소리가 나게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신문을 펼쳤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까막눈은 아니지만 깜깜해서 글을 읽을 수 없는 그의 눈에 경마 결과표가 아주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몇 번을 확인했지만 날짜는 분명히 내일 날짜였고, 모든 경마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불안해진 그는 혹시라도 누가 와서 신문을 빼앗을까 잠긴 문에 안전고리까지 걸었다. 하룻밤을 천추같이 보낸 그는 장롱 속 깊이 묻어두었던 최후의 비상금을 갈무리해 과천으로 달려갔다. 서울대공원을 미아처럼 헤매던 그는 시간에 맞춰서 경마장으로 갔다. 경마장은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도 그들 틈에 끼어들어서 신문에 있는 번호에 비상금 전액을 걸었다.
신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 경기 한 경기 끝날 때마다 상금 전액을 재투자했다. 경마가 완전히 끝났을 때 그의 앞에는 5만 원짜리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아주 큰 가방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수십억 원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어렵게 정신을 차린 그는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경마로 패가망신한 그들의 눈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처럼 번뜩였고, 당장이라도 그를 해치고 돈을 뺏을 기세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얼른 가방을 열고 돈을 휙휙! 뿌렸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돈을 사방으로 휘날렸고 그들은 돈을 주우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웠다.
그 틈에 현장을 빠져나온 그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호송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그의 머릿속에는 예쁜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잔잔한 호수가 있는 집에서 이 세상 최고의 미인과 아들딸 많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그는 푹신한 뒷좌석에 몸을 묻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고마운 신문을 펼쳤다. 콧노래를 부르며 신문을 뒤적거리던 그는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오늘 오후 7시 경찰차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윤영원 씨 심장마비로 사망.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과천경마장에서 수십억 원을 따고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귀가하던 중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더니 손을 쓸 새도 없이 사망했다.’
기겁한 그는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저 많은 돈을 한 푼도 못써보고 죽다니 분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살아 있을 때 얘기지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무슨 소용이랴?
살고 싶은 그는 안간힘을 쓰면서 경찰한테 차에서 내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경찰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경찰이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삿갓을 쓴 그는 저승사자였다.
저승사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너처럼 일은 안 하고 헛된 꿈에 사로잡혀 밥만 축내는 인간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해. 넌 지금 염라대왕한테 가는 거야.”
저승사자가 내게 손을 뻗는 그때, 주머니 속에 있는 와인 핸드폰이 친절하게 시간을 가르쳐주었다.
“자기야! 7시야. 일어나.”
(2018. 9. 1. 제100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