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똥 없애기
김종산
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큰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 건물 앞에 언제부터인지 비둘기 똥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지 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심각한 수준까지 오게 되었지요. 교회 앞에 서 있는 성도님들 머리 위에 똥이 떨어지기도 하고 문 앞에 똥이 쌓여 지저분하고 냄새도 났습니다.
옥상 끝에 비둘기 몇 마리가 앉아서 그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지켜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하러 나와 보면 문 앞에 비둘기 똥이 여기 저기 떨어져 있어 기분을 잡쳐 놓곤 했습니다.
“장로님, 비둘기 똥 안 떨어지게 어떻게 좀 해보세요.”
성도님들의 항의가 점점 심해졌지요. 목사님이나 저나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회의도 열어 논의도 해 봤지만 합당한 수를 도출하지 못했지요.
한번은 아가씨 한 분이 옷을 예쁘게 차려 입고 예배드리러 오다가 교회 문을 여는 순간 위에서 비둘기 똥이 옷에 떨어져 몹시 짜증을 내는 것을 보았으나 어찌해야 좋을 지 한숨만 저절로 나오더군요. 옥상 위에 비둘기가 좋아하는 먹이에 죽는 약을 타서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이러다가 성도님들 다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일로 시간 날 때마다 비둘기가 옥상에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지요. 그래도 상황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목사님이나 저나 성도님들 모두는 근심에 휩싸이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일로 기도하던 중에 무협지에서 읽었던 문장 한 구절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서구(주로 군용 통신에 이용하기 위해 훈련된 비둘기)로 날린 비둘기를 독수리나 매가 잡아먹는다는 것이었지요. 기도를 중단하고 생각해 봤지만 어디에서 독수리나 매를 구한단 말입니까? 아니 우리나라에 독수리나 매가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비둘기를 옥상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라 아니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어 실망만 더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너무 실망이 커서인지 제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더군요. 그렇게 한참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문득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습니다. 소설 속의 화가는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담장에 그림으로 잎새 하나를 그려 놓아 환자가 그 잎새를 보고 희망을 가져 살아났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저는 그 즉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여 집사님을 전화로 불렀습니다. 혹시 독수리나 매를 그림으로 진짜같이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집사님은 “제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지 않겠느냐” 하며 웃으시더니 정색을 하시고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독수리나 매를 그림으로 그려 옥상에 걸어두면 비둘기들이 옥상에 못 오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장로님, 맞아요. 시골에서도 허수아비를 만들어 새를 쫓아내지 않습니까? 정말 좋은 생각이시네요, 제가 집에 가서 멋진 그림 한 장 그려올게요.”
활짝 웃으며 돌아가는 집사님을 보니 제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토요일 점심 때 그 여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장로님, 이거 독수리에요, 한번 만져 보세요.” 라고 말하며 비닐 더미 한 개를 안겨 주셨습니다. 자세히 만져보니 크기는 웬만한 장닭 만큼 크고 두 다리도 있고 날개도 있으며 눈과 발톱 부리까지 다 있었습니다.
“집사님,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했는데 이건 완전히 박제 수준이 아닙니까?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나요?”
나의 물음에 집사님은 그림으로 그리는 것보다 모양을 만들어 옥상에 매달아 놓으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하더군요. 먼저 철사로 모양을 만들고 검은 헝겊으로 감쌌으며 모양이 변하지 않도록 내부에 폐지를 구겨 꼼꼼하게 채워 넣었답니다. 그런 다음 책받침을 오려 날개와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만들어 본드로 단단하게 붙여 놓았고 눈은 액세서리에 붙어 있는 큐빅을 빼서 본드로 붙여 번쩍번쩍하게 만들었답니다. 두 다리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들었구요. 마지막으로 눈이나 비가 와도 젖지 않도록 투명 비닐로 코팅을 했다는 겁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저는 온 몸과 마음으로 감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사님과 몇몇 성도님들은 “정말 진짜 독수리 같아요, 와! 신기하다.”며 다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저는 건물주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한 후 양해를 얻고 나서 아들을 시켜 옥상에 못을 박고 끈을 연결하여 독수리를 매달게 했지요. 작업을 끝내고 내려 온 아들과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독수리가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과연 효과가 있을까? 조금은 걱정을 하면서 우리는 헤어졌지요.
다음 날 아침 새벽 기도를 하러 교회로 나갔는데 저보다 일찍 나온 성도님이 “장로님, 비둘기 똥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진짜예요?” 라고 반문하니 “네, 한 방울도 없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야말로 10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비둘기 똥은 구경조차 못합니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집사님 부부를 초대해 식당에 가서 크게 한번 대접해 드렸습니다.
(2019. 7. 1. 제102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