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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꽃 피는 밤 (강춘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7-15 오후 4:19:48

조회수 2255

게시물 내용
제목 박꽃 피는 밤 (강춘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7-15 오후 4:19:48 (조회 : 2255)

박꽃 피는 밤
강춘석(시각장애인 시인)

  ‘핑그랑 당그랑 핑강 당강’ “어디어디 이 놈의 수, 이랴이랴.” 두엄 내던 걸채에 감고 누운 산그늘이 얹혔다.
  아지매는 흙먼지를 턴둥만둥 손국수를 미셨고, 내걸린 남포등 밑에 겨릅멍석이 깔린다. 구수한 애호박에 모깃불 보다 알싸한 고추장물 혀끝이 활활 타고 목젖이 뜨끔해도 등덜미에 엉긴 골바람만큼이나 시원하다.
  밤새도록 서울 얘기 듣자시던 어른들은 그새 잠이 드셨고 턱짓으로 가리킨 모기장은 둘이 들기 낙낙잖은 독장이다. 잘근 문 잇사이로 새어난 단 쇳소리에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고 돌아눕는다. 앞자락을 슬몃슬몃 헤집다 기겁하여 궁따고 삽작을 나서니, 뽀얗게 핀 박꽃을 꼬득이다 놀란 갈고리달이 용마름 짚어 넘고 내뺀다. 고샅을 벗어나 소롯길로 접어드는 발걸음이 는적는적 처진다. 산자락에서 논두렁 까지 뒤덮은 꿀밤나무에 달아맨 열일곱 꽃봉오리가 궂은비라도 내리면 산기슭 대나무밭에서 섧게섧게 운다는 골창길 때문이다. 바래주었으면 했던 연이가 소리없이 따라 질러 등을 내준다. 니가 내등 내가 니등 다투다가 새는 달빛을 시포라 우기길래 못이긴 척 업혔다. 살집 좋은 등은 포근하였고, 손가락 사이로 반항하듯 튕겨나온 가슴살이 야무지다. 배웅하다 따라붙고 돌아서면 되돌고... 꼬나보던 갈고리달 넘은 하늘에 풋별이 떴다.
  소 뜯기러 가자 불러놓고 저만치 앞선 연이를 솔밭에서 겨우 따라잡았다.
두렁콩에 콧김을 불어대는 누렁이 다그쳐서 큰골에 오르니, 낚아 챈 고삐를 양 뿔에 감아 묶고 볼기 쳐 산속으로 후린다.
  “도망치면 어떡하려고?”
  해 기울 때 와서 몰아가면 된다며 손을 잡아당긴다. 할금할금 돌아보던 정애와 봄이는 잰 걸음으로 내려갔고, 가풀막에 다다르자 손을 놓고 골짜기로 내닫는다.
  뱀이 도사리고 있을법한 덤불을 헤집어가며 한웅큼 산딸기를 꺾어왔다. 사이사이 선홍색 물이 들던 귓볼 같은 풋딸기가 섞였다. 워낭소리에 흠칫 놀란 연이가 꺼병이 튀듯 감나무 밑으로 숨어든다. 햇살은 퍼졌어도 이슬에 젖은 바짓가랑이가 츱츱하다.
  “석아, 니 거기서 뭐하노?”
  쟁기를 진 충수형이 내려보다 씩 웃고는 누렁이를 잦춘다. 주춤주춤 바위턱에 걸터앉으니, 깡동치마 까뒤집어 흙물 닦은 홍시를 쪼옥 짜 넣어준다.
하나 더 주워 온다고 틀어빼는 어깨를 자그시 감싸 안았다. 말끄러미 보던 눈이 감기고 풋딸기 물이 드는 귓볼 싱그러운 물강냉이의 풋내가 입 안에 가득찬다. 앞세운 연이는 강종강종 산모롱이를 돌았다.
  시리도록 찬 개울에 얼굴은 식혔지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은? 어떡하지
  “오빠는 와 인자오나?”
  쭈빗거리며 들어서는 나를 본 동갑내기 사촌이 배실배실 웃는다. 허벅지 까놓고 삼 비비던 정애가 봄이 옆구리를 찌르며 '쿡쿡'대는데, 홍시물 든 연이는 투당타당 삼꽁지만 긁어댄다. 대꾸를 한둥만둥 사랑방으로 들어가 책가방을 풀었다.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자니, 고리바구니에 소복한 삼꾸리를 올려달란다. 두발남짓 자세는 아래위로 서걱서걱 잘도 도는데 위잉 위잉 윙 탁 까르르르 까르르르 잣다가 세운 물렛말이 날 선 가락으로 뒷통수를 찌른다.
  집집마다 내걸렸던 남포등이 하나 둘 꺼지고 밤참 해준다며 주먹쌀 모아 밥을 짓고 서리하러 나간다. 팔매맞기 화투판을 깨고 갓 찐 풋고구마를 들여왔다. 통통하고 옹골진 것 골라 주는데도 알이 덜 들어 꺽적꺽적 씹힌다.
  몰래 마신 농주로 알딸딸딸 떠들고 웃다웃다 서울학생 베 보자고 들이 눕는다. 종아리에 누웠던 아랫마을 정애 따라 앞 집 봄이도 나섰다. 설거지 마친 동생이 짤작짤작 돌아온다. 가슴팍에 엎디었던 연이가 찡긋 눈짓을 보내고 방을 나선다. 간 밤 돌아서다 되돌던 그 길에 톡 타닥 툭 꿀밤이 떨어진다. 엎힐듯 달라붙은 가슴은 군불 지핀 아랫목만큼이나 뜨겁다.
  과녁빼기집 사랑방의 환한 봉창이 어느새 코앞이다. 귓전을 맴돌다 입술에 들엉기던 연이가 어둠 속에 묻힌다. 멍하게 바라보다 돌아선 눈앞에 퍼뜩 스쳤던게 뭐지? 가슴이 덜컥 한다. 설마... 도리질을 하였어도 오싹 소름이 돋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금만 더 아니 조기까지만 하던 미련이 발등을 찍었다. 내 발소리에도 놀랐는데, 발목에 감겼다 튀는 개구리 때문에 숨이 콱 막혔다. 골창을 벗어나 쏟아지는 별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젠 안심이다 했더니
  “오 옵 바 아 야 아 아 아”
  “어헉 헉”
  뭐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겨우 돌린 숨이 막힌다. 얼어붙은 발바닥 보다 찬 손이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까르르르 웃던 봄이가 정말 갈거냐고 묻는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보니, 치렁치렁한 긴치마가 아닌가. 바람에 떨어지나 했는데, 에라 인석아, 진짜배기 꿀밤이다.
 “그래, 내일 간다. 겨울방학 때 또 올께. 잘 있어.”
  노루막이 넘는 다님을 애처로이 바라보던 박꽃이 고개를 떨군다. 숨 죽여 지켜보다 찌이익 틀림표를 긋고 돌아앉은 별똥별 꿈틀 새벽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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