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
서경애(주부)
혹한 속의 햇살이라 반갑기가 이를 데 없다. 차창으로 밀려오는 햇살이 거리마다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도 추웠던 겨울은 뒷모습만 보인 채 돌아서고 있다. 그 덕에 나도 기분이 한층 밝아졌다. 지난겨울, 연료비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이던 피곤함을 벗어 버릴 수 있다는 홀가분함에 봄 햇살은 더 반갑다.
이런 기분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말하는 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나온다. 어린아이 장난하는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거리의 조명이나 공공기 간의 쓸데없는 소비를 막겠다는 것이다. 거리마다, 대교마다, 건물마다, 나무마다 조명들을 달아 놓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아닌 것처럼 떠들어 대던 때가 엊그제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환경을 위해서 절약해야 된단다. 자연 보호 운동가나 환경단체에서 나무들에게 조명을 달아 전류를 흐르게 고문하는 것도 엄밀한 살목(殺木)행위라고 했을 때에는 무식한 소리라고 하더니, 이제는 자연을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우리가 아껴 써야 한다고 할 때에는 들은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왜 지금에 와서 환경이 어떻고, 자연이 어떻고 야단을 하는지 모르겠다. 웃음이 나왔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환경보호를 말하기 이전에 절약모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불하나 더 켜려고 해도 계량기 바늘이 팽팽 돌아가는 소리에 끌 수밖에 없고, 겨울이 너무 추워 분위기 한 번 내 보려고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실내 온도를 높이지 못한다. 시내 한복판에 조명 파티를 열어도 언제나 그 사각지대에서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다. 누구한테인지는 몰라도 미안한 마음에 뒤가 씁쓸하기 일쑤였다. 대교마다 호화찬란하게 조명을 설치해 놓았어도 거기 한 번 마음 편하게 못 다녀왔다. 나무마다 전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이런 우리에게 더 절약 하라고 방송마다 떠들어 대며 사용한다는 방법이 에너지 비를 계속 올리는 것뿐이다. 우리는 절약하면 하는 대로 연료비가 줄어들기는커녕 그때나 지금이나 연료비는 점점 더 늘어난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절약인가.
들리는 소리로는 우리처럼 흥청망청 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환경을 위해 질서 있는 에너지 사용으로 거리도 대낮같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누가 더 많이 쓰나 내기라도 하듯 정신 못 차리더니 이제 와서 절약 안하면 벌금을 물린다고 유치하게 논다. 오랫동안 ‘내 것 내가 쓰는데 누가 뭐래?’ 하는 식으로 서민들을 우롱하더니 이제는 생태계 전문가로 환경운동가로 피켓을 들고 우리를 위협한다. 그동안 실컷 먹고살자던 생각들이 국제 원유 값 파동으로 고쳐 질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어차피 있는 사람들은 국제 원유 값이 어떻든 에너지 주의보가 있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 사람들은 여기가 아니어도 살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텐데 무엇이 걱정이랴. 핏대를 올리는 저 방송이 우스워 보이는 것은 내가 이미 병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 햇살과의 즐거운 나들이가 방송 때문에 다시 어두워 졌다. 어수선한 이 정국이 언제쯤 새로 돋는 풀잎처럼 희망이 보일까? 희망이 없어도 보이는 것처럼 믿고 살아야 하나? 내일은 낫겠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세상살이도 그렇게만 된다면 저 방송이 이토록 역겹지는 않을 텐데….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속으면서 살아왔다. 되지 않는 희망을 품고, ‘설마 정치인도 사람인데….’, ‘재벌들도 사람인데….’ 하며 사람에게 희망을 품고, 희망을 안겨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희망이 사람과 사람사이를 건너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는 때가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