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체험한 나의 휴가
김한봉(헬스키퍼)
모처럼 휴가를 내어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평일 4시 이후엔 할인한다는 정보에 서둘러 놀이공원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었고, 입구엔 사람이 얼마 없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티켓 창구의 직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오늘 입장객 많아요?”
“아뇨! 많지 않아요, 오늘 입장하시는 분들은 행운이에요.”
안내원의 말에 안도의 숨을 들이 삼켰다.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실명하기 전에 놀이공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많았으나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추억을 더듬는 기분으로 가볍게 들어섰다.
안내원의 말대로 관객은 적었다. 그러나 놀이 기구에 차례를 기다리는 줄을 보고는 나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놀이기구로 사람들이 몰려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 보였던 것이다. 놀이기구마다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아∼ 이 무신 풀지 못할 삼각함수 로그 제곱근의 경우냐’
그래도 들어 왔으니 으쩌랴, 애들 좋다는 대로 끌려 다녀야지 뭐…
막내와 둘째는 우선 ‘자이로 드롭’을 타야 한단다. 나는 사실 이런 놀이공원은 적성이 안 맞는다. 아니 안 맞는 이유가 있다. 25m 상공, 17층 높이! 3초 만에 내려오는 거란다.
“아…, 안타면 안 되냐?”
아내와 애들한테 후들거리는 목소리로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
“당신은 확실히 애정이 식었어, 아니 평생 처음 있는 일에 뭘 주저주저하는거야! 무서워? 무서워?”
아내가 불쌍하다는 듯 자꾸 채근한다.
‘저 높은 꼭대기가 무서운 게 아니고, 내 의견은 묵살하고 애정 타령하는 당신이 더 무섭다라고 했다간, 큰일 나겠지?’
그래도 3초라는 짧은 시간 탓인지, 긴 줄을 섰음에도 40분여 만에 탑승했다. 덜덜 떨리는 내 몸짓을 느꼈는지, 안내원이 조심스레 내 팔을 잡으며 조용히 묻는다.
“괜찮으시겠어요?”
안내원은 이렇게 물으며, 옆의 아내를 힐끗 쳐다본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다소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요? 내가 어때서!”
“아뇨, 괜찮으시다면…”
다소 의아해하며 떨떠름하게 학생이 뒤로 물러난다.
안전바를 내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기구를 꼬옥 붙들고 있자니,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쉬를 안 한게 천만다행! 3초가 그렇게 긴 시간인지 이번에 알았고, 자유낙하에 가까운 짜릿함은 정말이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홍보성 글은 아니지만, 55세 이하이신 분들 중에 아직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한 번 타 보시길! 하지만 나보고 다시 타 보라면 사양한다.
그렇게 고문을 치르고 다음 기구로 가자는데, 그게 ‘후렌치 레볼루션!’. 프랑스 혁명이 상전벽해 되듯 온 세상이 뒤집어진 것에 빗대어 저 놀이 기구 이름을 지었다면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둘째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당신이 앞에 타!”
아내는 혹시나 내가 뒤로 도망칠까봐, 아예 나더러 앞줄에 타라며 등을 떠민다. 이 기구는 2시간 이상을 기다린 거 같았다. 다리가 너무 아파 서있을 수가 없었는데 애들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척을 하는 건지….
이 기구는 승차 시간이 3분 정도다. 그러나 나는 그 3분이 마치 30년도 더 되는 그야말로 짜릿한 전율을 경험했다. 칸칸이 둘씩 짝을 지어 탄 열차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 꼭대기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는 기분이란 머릿털이 다 빠질 듯이 휘날리고 얼굴을 에일 듯이 스치는 바람의 세기가 압권이었다.
3분 동안 숨을 어떻게 참고 지났는지 모르게 도착지에 닿으니, 미소 머금은 안내원의 인사가 우리를 반겼다.
“재미있으셨나요?”
‘재미나 뭐나, 난 죽다 살은 기분이더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체면상 근엄한 표정으로 장중하게 대답했다.
“괜찮았어…요”
그렇게 애들과 짜릿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놀이공원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방송이 들렸다.
애들과 나는 오랜만에 만끽한 스릴 넘치는 순간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