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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 기고] 나의 결혼 이야기 제2화 우리가 연인이 되기까지(강시연)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06-01 오전 9:53:18 (조회 : 200)
제2화 우리가 연인이 되기까지
강시연
  한참 예민할 청소년기에 나를 덮친 사고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부상 부위가 얼굴에만 집중되었던 탓에 시력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흉터와 비대칭, 부정교합 등의 결과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안 그래도 외모에 예민할 시기였고, 장래희망마저 연예인이었던 나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시각장애보다 망가진 외모에 더욱 절망했었더랬다. 가족들 앞에서는 항상 밝게 웃고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속은 말이 아니었다. 뭔가에 열중해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장애에 대한 두려움도, 외모에 대한 절망도 언젠가는 잊을 수 있겠지 하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그렇게 몇 년간을 발버둥 치며 보냈다.
  퇴원 후 6개월의 요양, 곧바로 이어진 기초재활, 그리고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복지관의 각종 프로그램 참여. 그래도 뭔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바쁘기는 한데 실속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대가 되었음에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늘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런 허전함과 조급함을 느꼈던 것 같다.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첫 직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늘 누군가에게 도움만 받았던 내가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이자 의지가 될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특별한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울고 웃으며 점차 마음속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었다. 한 명의 성인으로 당당히 경제활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해준 나의 첫 직장.
  그러나 그곳이 나에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언제나 내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지금의 내 남편이다.
  우리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직장을 다니며 한 명의 성인으로의 자존감은 회복할 수 있었지만, 여자로서의 자존감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연애나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내게 호감을 표시하는 남편을 모르는 척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의 밑바닥에는 잔존시력조차 전혀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과연 남들처럼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만약에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를 낳게 되면? 등등, 끝도 없는 고민들이 깔려 있었다.
  20대 중반, 그저 가볍게 연애만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나이였다. 나도 남편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남편 역시 주위에서 “넌 정안인 여자랑 만나야 돼”라는 말을 늘 듣고 자란 탓에 당연히 그렇게 될 줄로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막상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 여성에게 마음이 끌리고 보니 ‘여기서 더 가까워져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 무척 많았다고. 결국 서로를 연애 상대로 결정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다름 아닌 서로의 ‘장애’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마음을 접기에 우리가 서로에게 가진 사랑이 너무도 컸다.
  함께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고, 여행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용기가 생겼다. 사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었고, 또 어찌어찌 하다 보면 불가능한 일도 크게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들과 비슷한 연애를 하며 남편과 만나는 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사고 이후 집과 회사만을 오가던 내가 남편과 함께라면 새마을호, 무궁화호, KTX 열차를 가리지 않고 지방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큰일을 겪고 나서 극도로 무심해진 감정에 작게나마 파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 앞에서만은 어느 정도 솔직하게 감정표현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못했던 예전과는 달리 그게 단 한 사람일지라도 아픔을 쏟아내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어주던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편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머뭇거렸던 시작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서로를 열심히 이해하고 또 사랑하며 장장 4년 6개월간의 긴 연애를 이어나갔다.
  물론 다른 연인들처럼 때로는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투덕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큰 다툼 없이 연애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나의 성향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르지만 그것을 그냥 그대로 이해하고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추려 하지 않았던 우리의 암묵적인 약속이 결국 두 사람의 앞날을 결혼이라는 축복 속으로 이끌게 된 것이다.
(2018. 6. 1. 제10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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