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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보 기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신혜령)
작성자 점자새소식 작성일 2018-04-30 오후 5:06:08 (조회 : 261)
초보 기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신혜령(점자새소식 객원기자)
 
  “점자새소식 객원기자를 제안합니다.”
  모든 것은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옛 동료인 점자새소식 담당자가 내게 보낸 메일이었다. 오래전 스치듯 글쓰기가 취미라는 말을 기억하고 제의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제안에 응할 경우 격주로 발간되는 ‘점자새소식’의 ‘시각장애계 소식’중 한 개 기사를 맡게 될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흥미와 호기심에 덥석 하겠다고 메일을 작성했다. 그러나 막상 보내려고 하니, 자신감이 하향 평준화를 그렸다. 기사, 무려 기사지 않은가. 평소 쓰던 자유분방 도서감상문이나, 솔직하게 터놓는 일기와는 다를 게 뻔했다. 하지만 ‘기사’라는 형식에 졸아들어서 망설이고 있기에는 손가락이 간질간질 설레었다. 결국 본능이 이성을 이겼고, 기사를 써볼 기회를 잡기로 했다. 그것이 객원기자 활동의 시작이었다.
  점자새소식 988호부터 각계각층의 시각장애인 인터뷰, 보도, 기획 등 다양한 기사를 작성해왔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취재하면서 난감했던 일도 있었고,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터지는 일도 있었다.
  그중 마림비스트 전경호 씨에 대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일단 처음으로 맡은 기자 일인 것도 있거니와 인터뷰 대상자가 같은 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중고생 시절 직접 연주를 들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를 내세우기가 겸연쩍었고, 과연 나를 기억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딱 기자 입장에서 “안녕하세요, 점자새소식 신혜령이라고 합니다”로 시작해 사전 양해 후 인터뷰 일정을 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연락을 취했을 때 들은 첫 마디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1:1로 버무려진 질문이었다. “너 ‘혜령’이니?!”
  그렇다. 살짝 늦긴 했지만 ‘그놈’이 ‘그놈’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인터뷰 약속 잡을 때는 당황해서 기억하지 못했다가 끊고 나서 ‘어라? 이름이....’ 하면서 퍼뜩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첫 단추는 좀 엉성하게 끼웠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잘 끝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쓴 기사도 무사히 실렸다. 물론 늘 전화로만 인터뷰를 하는 건 아니다. 종종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발로 뛰며 취재도 나간다.
  당연하지만 기자 일을 하면서 유쾌한 추억만 있진 않다. 특히 보도기사를 쓸 때가 그랬다. 난생처음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해 봤고, 얼마나 허접한지 몸소 체감했다. 국가에서 공시한 정보와 실제 기계가 다른 걸 보고 어찌나 뜨악했던지. 있다고 하는 점자는 없고, 이어폰 잭도 없었다. 누구 한 명을 확 고소하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간혹 집중 취재를 하다 보면 관련 담당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종종 그 과정을 왜 하나 싶기도 하다. 어찌나 하는 말이 일관되던지, 굳이 통화하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다.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데요. 다른 곳에 문의하세요’라는 안내가 사람의 목소리로 자동응답기처럼 나온다. 특히 보조기기 관련 기사를 쓸 때는 두 개 이상의 기관이 협조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보니 위의 자동응답 알림을 들을 일이 많았다. 진흥원에 물어라, 센터에 문의해라. 아주 핑퐁이 따로 없다. 통화하며 허공에 주먹 감자를 수십 번은 먹였을 거다.
  취재를 나갔다가 헤매거나 다치는 일은 빈번하다. 음향신호기 관련 기사를 쓸 때의 일이다. 임의로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지간한 건널목에는 전부 신호기가 있어서 ‘참 많이 발전했구나’라고 혼자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설비 상태를 보고 한숨만 푹 쉬었다. 압권은 화단에 신호기가 박힌 것이었다. 꽃을 심는 그 화단 말이다. 그런데 어느 거리에는 그 화단에 신호기가 심겨 있더라. 대체 본인 같은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이용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몸소 시범을 해보려다 화단에 정강이를 까이고 시퍼런 도장만 찍었다.
  그 밖에 ‘좋은 이웃 카페’ 김국환 대표 인터뷰에서 카페의 멀쩡한 정문을 두고 뒷문으로 들어가기, 아나운서 이창훈 씨와의 인터뷰 때 대학로 거리에서 우왕좌왕 미아 탈출하기와 같은 코미디를 찍은 적도 있다. 헤매고 까이고 하는 건 시각장애인 기자의 숙명인 모양이다.
  ‘기자’ 그리고 ‘기사’라고 하니 좀 폼나게 보인다. 하지만 사실 거창하진 않다. 2장 분량의 글로 세상이 바뀌거나 정책이 수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누군가 다룬 적 있는 소재로 기사를 작성할 때면 은근히 허무감까지 든다. ‘이렇게 기사까지 나왔는데 아직도 변하지 않았단 말이야?’ 하는 식의 허탈함이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기사 쓰기는 어느새 보람이자 성취욕을 자극하는 일상이 되었다. 평생 만날 일이 없을 사람들을 만나 그들 삶의 단면을 엿보고, 평소 그냥 지나쳤을 사건과 문제에 대해 탐구할 수 있다는 점, 한정된 지면 안에 들어갈 팩트를 뽑아내 객관적으로 구성하는 것, 그런 모든 과정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사실’을 전하고 싶기에 중도에 하차할 생각은 없다. 좋은 사건이든 부정적인 소식이든, 기자의 역할은 ‘사실’을 알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알아야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최소한 1명이라도 내가 쓴 기사로 어떤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호로 1000호를 맞이한 점자새소식과 함께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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