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할 자유’를 읽고
신혜령(점역교정사)
묘하고 독특하다. 처음 재활통신망에서 ‘실수할 자유(로렌 밀러, 라임, 2016)’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실수하는 데 무슨 자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살면서는 무수히 반복하는 게 실수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실수’의 뒤에 ‘자유’가 왜 붙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순전히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대체 뭘까?’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도서를 다운받았다. 심지어 책 소개도 보지 않고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오늘’에서 그리 멀지 않은 2030년이다. 올해가 2017년이니 딱 13년 뒤의 세상이다. 글 속의 미래에는 업그레이드된 스마트폰 ‘제미니’와 의사 결정 앱 ‘럭스’가 출시된다. 사람들은 제미니와 럭스를 밤낮으로 들여다보며 사소한 일에까지 앱의 도움을 구한다. 그것은 주인공 로리도 똑같다. 단지 ‘테덴 영재학교’에 응시한 것만은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소녀의 환경이 바뀌면서 글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영재학교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느닷없이 듣게 된 청각기능 이상 장애로 치부되는 ‘다웃’의 목소리, 비밀 동아리와 가면무도회, 왠지 로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엄격한 타서스 선생님,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소년 노스와의 만남. 이런 과정 끝에 밝혀진 것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나노봇’과 ‘럭스’에 얽힌 ‘음모’였다!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 ‘제미니’와 의사 결정을 돕는 앱 ‘럭스’가 등장한다. 명칭만 놓고 보자면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작가의 센스가 느껴진다. 제미니(Gemini)는 쌍둥이 별자리의 이름이고 럭스(lucks)는 행운이라는 뜻의 영문이다. AI(인공지능)를 또 다른 ‘나’로 인식하고 ‘행운’이라는 이름의 편의를 얻기 위해 앱에 선택을 맡기는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감성의 쌍둥이 ‘이성(제미니)’을 놓지 못하고, 편의를 위해 인공의 ‘행운(럭스)’에 의존하는 게 아닐까?
작품 속에는 “휴대폰에 매달려 사는 바보들 때문에 무시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평소 스마트 기기에 의지하지 않아 소설의 설정이 와 닿지 않았다. 어떻게 한낱 AI 기계 때문에 의사 결정 능력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개성, 자신의 주관, 옳고 그름의 사고력까지. 하지만 곰곰 돌이켜 보니 영 그른 설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글 속 풍경이 바로 오늘날의 풍경이었다. 13년 후의 미래로 갈 것도 없이 당장 밖에만 나가도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사는 사람들 천지가 아닌가. 덕분에 시각장애인이 케인을 짚고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걷다가 흰지팡이에 발이 걸려서 비틀대는 행인은 이제 그리 대수롭지 않으니까. 이런 사정 탓에 ‘실수할 자유’의 내용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타락하는 것은 자유이나, 일어서기에 충분하도록” 존 밀턴이 쓴 ‘실락원’의 한 대목이자 소설의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는 문장이다. 살다 보면 간혹 누가 대신 결정 좀 해줬으면 싶은 때가 있긴 하다. 대세에 따르면 편하니까 그냥 군말하지 말자는 생각도 들곤 한다. 온갖 ‘현명한 의견’과 ‘논리적인 조언’을 듣고 시작하기도 전에 ‘확률도 적은데 포기할까?’하며 기가 꺾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살았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장애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이성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
이 작품은 말한다. 순간의 ‘편리’만 좇다가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것을 잃었다는 자각 자체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유행이나 트렌드에 넘어가 자신에게 맞고 어울리고를 떠나 쇼핑을 하는 사례만 보면 우리는 이미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소설은 말한다. 실수하는 것조차 우리의 자유라고.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고, 직관은 모험의 아버지며 도전은 발견의 스승이다. 이 모든 것들은 자유의 산물이며, 이러한 경험이 모여서 발전의 토대가 된다.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할 테니까. 그런 자유를 우리는 이미 지니고 있다.
‘실수할 자유’는 청소년 소설치고는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적절히 버물어져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스케일 탓에 개인의 선택, 그로 인한 책임 등에 관한 주제의 초점이 약간 빗나간 느낌이 든다. 게다가 주변 인물 묘사 등도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타서스 선생님이 여자라는 것도 중간에서야 겨우 알았을 정도다. 그러나 글의 배경만으로도 선택과 책임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면에서는 꽤나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끝으로 주인공의 독백이자 글의 마지막 문장으로 감상을 갈무리한다.
“두렵지만 영광스러운, 우리 모두의 ‘실수할 자유’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