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선풍기
서관수(대구점자도서관)
사람들에게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질 무렵이면, 나는 늘 생각하는 선풍기가 된다. 굳이 사색의 계절인 가을이 아니더라도, 일거리가 거의 없다보니 한가로움에,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날개가 있으면서도 날지 못하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나를 놀려댄다. 나는 바보가 맞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그럼 왜 사람들은 지키자고 법을 만들고도 법을 안 지키는지? 이성을 지닌 고등동물이면서 왜 파렴치하게 양심을 파는 저등동물처럼 살아가는지?
지난 여름, 나는 부지런히 바람을 만들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아니 욕을 얻어먹는 날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내가 힘겹게 만드는 바람을 쐬면서도, “에이, 선풍기바람은 정말 싫어. 더운 바람만 뱉어내는 저놈의 선풍기 확 치워버리고 당장 에어컨을 장만해야 하는데” 푹푹 찌는 날씨에게 퍼부을 원망을, 오히려 내게 생짜증을 퍼붓는다. 그러니 역시 신경질적으로 최고속 버튼을 눌러, 내가 어지러워 미치도록 하기가 일쑤다. 그것도 그 잘난 발가락으로. 게다가 자기들은 나를 욕하면서도 밤낮으로 나를 껴안고 산다. 그러면서 어쩌다 어린이들이 내 곁에 올라치면 아무 죄 없는 나를 발로 툭툭 밀어부치고는, 마치 나를 어린이를 잡아먹는 흉악범이라도 되는 양 푸대접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예의가 없다. 하루 종일 고개를 뺐다 끼웠다 좌우로 돌려대고 또 속도는 얼마나 변덕이 죽 끓는지. 그나마도 나를 조심조심 다루는 게 아니라, 그저 닥치는대로 발로 두들겨대니, 난 도무지 인간들이 예의범절을 아는 사회적인 동물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누구는 뒤통수가 뜨끈뜨끈 불이 붙도록 바람을 토해내고 있는데, 고작 무식하게 발길질이나 해대니... 그러지 않아도 이쪽저쪽 돌려대는 고갯짓에 요즘은 삐걱대는 품이 뭔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비라도 오는 날이면, 숫제 뼈 마디마디가 쑤시며 온몸이 달달 떨리는 증상이 목 디스크가 의심스럽다. 근데도 내게 하는 짓들을 보면, 아예 내 모가지를 부러뜨릴 작정 같다.
사람들은 아쉬울 때만 나를 찾지, 찬바람이 슬쩍 느껴지면 나를 아무렇게나 팽개친다. 그것도 먼지투성이의 구석자리에다 나를 쳐박기가 일쑤다. 어려운 말로 토사구팽이라던가...? 여름내 때가 찌들었으니 깨끗하게 목욕 좀 시켜주면 안되나?
그런 다음 예쁘게 포장해서 보관해두면 어디가 덧나나? 나도 여름에 부지런히 일을 했으니, 겨울잠만큼은 편안하게 잘 권리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무렇게나 나를 보관했으면서도, 다음해 여름이면 나를 못생겼다느니, 바람이 신통찮다느니, 소리가 시끄럽다느니 생트집이다. 제발 이제부터는 이런 억지소리 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내 얼굴에 젓가락 같은 날카로운 물건 제발 좀 쑤셔대지말기를 부탁하고 싶다. 비록 날개가 있어도 날 줄 모르는 바보지만, 나도 아파할 줄은 안다.
이제 마지막 부탁이다. 나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플러그를 꼭 빼줬으면 좋겠다. 몸에 아주 적은 양의 전기만 흘러도 나는 완전히 푹 쉬지를 못하니까. 물론 나의 휴식도 휴식이지만, 전기를 아끼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를 소프트하게 대해주고, 사용 후에는 깔끔하게 보관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가을타는 선풍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