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한 대한민국에서 시각장애인이 살아가려면
김영수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셋방살이도 4년째가 되던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방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기한이 한 달밖에 없어서 “어떡하나” 생각하다가 그동안 쌓인 집 없는 설움과 평소에 나오지 않던 오기가 발동되어 덜컹 집을 사버렸다.
오기를 부린 대가는 가혹했다. 상상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됐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쪼들리는 생활과 혹독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일단은 큰집으로 이사한 것에 만족하며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벌써 이사한 지 7개월째다. 집을 옮긴 이후로 나에게 찾아온 큰 변화 중 하나는 출퇴근길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의 출퇴근길은 골목으로만 다니다 보니 큰 변수 없이 비교적 안전한 길이었는데, 이사한 후의 출퇴근길은 좁은 도로에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로 인해 늘 긴장을 해야만 한다. 이른바 사람과 자전거, 차와의 전쟁이다. 그래서인지 출퇴근길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가 조금씩 쌓이고 있다.
얼마 전에도 출근길에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침저녁으로는 내가 다니는 좁은 도로에는 차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곤 한다. 차를 피해서 길가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뭔가에 살짝 부딪히는 듯하더니 툭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대굴대굴 굴러가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오토바이 헬멧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걸어가는 속도와 헬멧이 굴러가는 속도가 비슷해서 한 20초 정도 따라가면서 저걸 붙잡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시동이 걸려있는 차에 부딪히더니 더 이상은 굴러가지는 않았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가려니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헬멧”이라고 나한테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근데 어쩌랴...차 밑으로 들어갔는지 바퀴 쪽에 걸려 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흰지팡이를 본 건지 더 이상 소리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지나가버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대처가 조금 늦어서 그 사람은 속으로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더 미안한 건 오토바이 주인이다. 차에 있던 사람이 헬멧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으면 모를까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오토바이 주인이 본다면 아마 욕이 저절로 나왔을 듯하다. 그 이후로는 오토바이가 더 이상 내 앞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오토바이 주인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나도 갈 길은 가야 하는 것을...
이렇게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요즘은 나도 상대방도 안 다치기 위해 보행에 좀 더 신중해지고 있다. 흰지팡이를 제대로 짚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마흔의 젊은 나이에 드러누워 지내서는 안 되니깐 말이다. 더군다나 언제 다 갚을지 상상이 안 되는 대출금 때문이라도 내 몸은 내가 지키며 직장생활을 무사히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니 말이다.
낯선 길이나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보행할 때 방향을 잃어 헤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어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길을 헤맬 때 도움을 적잖게 받고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나 보행내비게이션 앱으로 길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아져서 혼자 생활하는 나에게는 큰 도움을 준다. 불과 얼마 전에도 택시에서 잘못 내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지도 앱을 이용해서 목적지를 쉽게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혼자 보행을 할 때 흰지팡이에만 의존했던 예전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의 활용으로 목적지를 좀 더 빠르게 찾아갈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와 함께 느끼는 것은 흰지팡이를 설렁설렁 짚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일어난 헬멧 사건처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도 좋고, 사람들의 도움도 좋지만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최근의 출퇴근길에서 더욱 많이 느낀다.
새로운 집은 나에게 빚더미를 안겨 주기도 했지만, 다이내믹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보행이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오기를 부린 대가는 가혹했다. 상상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됐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쪼들리는 생활과 혹독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일단은 큰집으로 이사한 것에 만족하며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벌써 이사한 지 7개월째다. 집을 옮긴 이후로 나에게 찾아온 큰 변화 중 하나는 출퇴근길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의 출퇴근길은 골목으로만 다니다 보니 큰 변수 없이 비교적 안전한 길이었는데, 이사한 후의 출퇴근길은 좁은 도로에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로 인해 늘 긴장을 해야만 한다. 이른바 사람과 자전거, 차와의 전쟁이다. 그래서인지 출퇴근길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가 조금씩 쌓이고 있다.
얼마 전에도 출근길에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침저녁으로는 내가 다니는 좁은 도로에는 차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곤 한다. 차를 피해서 길가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뭔가에 살짝 부딪히는 듯하더니 툭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대굴대굴 굴러가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오토바이 헬멧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걸어가는 속도와 헬멧이 굴러가는 속도가 비슷해서 한 20초 정도 따라가면서 저걸 붙잡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시동이 걸려있는 차에 부딪히더니 더 이상은 굴러가지는 않았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가려니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헬멧”이라고 나한테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근데 어쩌랴...차 밑으로 들어갔는지 바퀴 쪽에 걸려 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흰지팡이를 본 건지 더 이상 소리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지나가버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대처가 조금 늦어서 그 사람은 속으로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더 미안한 건 오토바이 주인이다. 차에 있던 사람이 헬멧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으면 모를까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오토바이 주인이 본다면 아마 욕이 저절로 나왔을 듯하다. 그 이후로는 오토바이가 더 이상 내 앞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오토바이 주인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나도 갈 길은 가야 하는 것을...
이렇게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요즘은 나도 상대방도 안 다치기 위해 보행에 좀 더 신중해지고 있다. 흰지팡이를 제대로 짚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마흔의 젊은 나이에 드러누워 지내서는 안 되니깐 말이다. 더군다나 언제 다 갚을지 상상이 안 되는 대출금 때문이라도 내 몸은 내가 지키며 직장생활을 무사히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니 말이다.
낯선 길이나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보행할 때 방향을 잃어 헤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어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길을 헤맬 때 도움을 적잖게 받고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나 보행내비게이션 앱으로 길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아져서 혼자 생활하는 나에게는 큰 도움을 준다. 불과 얼마 전에도 택시에서 잘못 내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지도 앱을 이용해서 목적지를 쉽게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혼자 보행을 할 때 흰지팡이에만 의존했던 예전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의 활용으로 목적지를 좀 더 빠르게 찾아갈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와 함께 느끼는 것은 흰지팡이를 설렁설렁 짚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일어난 헬멧 사건처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도 좋고, 사람들의 도움도 좋지만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최근의 출퇴근길에서 더욱 많이 느낀다.
새로운 집은 나에게 빚더미를 안겨 주기도 했지만, 다이내믹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보행이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