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콩나물국
조재훈
맹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기숙사에 대한 추억이 많다. 지금은 통학생이 많아졌다. 그러나 90년대까지만 해도 맹학생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했다. 특히 배고픈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한 사람은 할 이야기가 많다.
누룽지와 황우도강탕 이야기는 물론이지만 콩나물국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쇠도 소화시킨다는 한창나이인데 먹을 것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내가 다니던 서울맹학교는 지방의 맹학교보다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해를 넘긴 정부미로 지은 밥에다 콩나물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명절 같은 때는 고깃국이 한두 번쯤 선을 보였는데 ‘황소가 강을 건넌 것 같은 멀건 국’이었다. 그래서 이름하여 ‘황우도강탕’이다.
배고픈 학생들은 외출금지를 피해 학교 울타리 너머 가게와 개구멍 거래를 했다. 이 형편을 잘 아는 사감선생님은 학생들이 내미는 돈을 살짝 가로챘다가 식당에서 나누어 주셨다. 모두가 가난하던 때라 대부분 알사탕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으므로 그 형편을 고려하신 것이다. 허기를 참지 못하는 행동파 학생들은 한밤에 부엌을 뒤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식당에 남아있는 것이라야 누룽지 조각 외에 기대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혹 상급생이 안마피리를 불러 나갔다가 손님을 맞으면 군고구마나 건빵 같은 것을 사다가 실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식당은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 사이에 위치하여 사람 모이기가 편리했다. 그런데 맹학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하급생의 위계 문제였다. 명분은 기숙생들의 질서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위계가 군대를 뺨칠 정도로 지나치게 엄격했다. 남녀 학생들의 집합에 편리한 식당이 상급생의 하급생 길들이기 장소로 자주 이용이 되었다. 그런데 식당에 모이면 퀴퀴한 음식 냄새가 찌들어 있어 학생들의 가슴을 한층 답답하게 만들었다. 도난사건 같은 것이 있을 때는 취침시간에 관계없이 밤늦도록 그곳에 기숙생들을 모아놓고 범인 색출에 애를 썼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음식 냄새만 맡으라니! 된장 냄새는 워낙 강하여 식당 전체를 사로잡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콩나물 냄새가 자꾸 군침을 삼키게 하였다.
가격 때문인지 콩나물국은 매일 나오다시피 하였다. 지금은 콩이 귀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쌀보다 잡곡이 훨씬 저렴했다. 형무소에서 정말 콩밥만 주었었는지 모르지만 무엇을 잘못하여 벌을 받을 정도일 때는 ‘너 콩밥 먹으러 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그러니까 콩이 그렇게 흔하던 시절이었다. 하여튼 맹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먹은 콩나물을 연결하면 경부선 철로보다 길 것이다.
콩은 만주일대를 비롯하여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두만강이라는 말도 그 ‘콩 두’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던 어떤 유학생은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이 내용을 발견하고 고국에 대한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콩을 두고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말은 흔히 듣던 말이 아닌가? 영양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소고기보다 콩이 항암효과를 비롯해서 더 장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는 콩처럼 좋은 식품이 없단다.
돌이켜보면 가난하던 시절의 식품이 모두 건강식이 아니었는지? 흰 백 자가 들어가 있는 백미, 백소맥분, 백설탕은 ‘3백’이라 하여 사람이 멀리해야 할 식품으로 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먹던 보리, 콩, 고구마 같은 것이 오히려 건강식품으로 추천되고 있다.
검은콩은 약콩이라 하여 동의보감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 콩나물을 기르는 콩 가운데에는 ‘쥐눈이콩’이라는 콩이 있다. 쥐의 눈처럼 생긴 이 검은콩은 약콩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메주콩인 흰콩이 더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검은콩 콩나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콩나물국을 많이 먹은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몸보신을 했던 거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려운 시절에 맹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영양부족이 많았겠지만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영양사까지 배치되어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된 요즘 학생들이 오히려 체력이 약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안마 실습을 할 때에도 체력이 달리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가난도 축복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맹학생은 이 콩의 힘으로 깡통축구에 기숙사 골목야구도 하며 생활하였다. 콩도 악조건을 잘 극복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뿌리에서 거름이 되는 질소를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비료가 없는 척박한 밭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농약이 없을 때라 콩은 완전한 유기농 무공해 식품이었다. 콩나물국은 영양도 좋지만 해독작용이 있어서 알코올 중독자에게도 약처럼 쓰인다. 또 우리들은 요즘처럼 의약품이 다양하게 개발된 시대에도 콩나물국을 감기약 대용으로 쓰고 있다.
이러한 콩나물국 효과인지 그 시절 맹학교 졸업생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장애인의 진출을 가로막던 그 높은 철책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였고 꽤 높은 건물에 외제차도 구입하며 살았다. 만약 그때 콩나물국처럼 고깃국을 학생들에게 계속하여 공급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만은 물론 고지혈증과 고혈압에 당뇨병 같은 것으로 수명까지 위협을 받지 않았을지 반문하게 된다. 콩나물이 주재료인 비빔밥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세계적인 건강식이 되지 않을지?
물릴 법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콩나물국이 그립다. 그러나 무공해 콩나물은 구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갖은양념에 정성을 기울여도 그때의 콩나물국 맛을 찾을 수 없으니 웬일일까...
누룽지와 황우도강탕 이야기는 물론이지만 콩나물국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쇠도 소화시킨다는 한창나이인데 먹을 것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내가 다니던 서울맹학교는 지방의 맹학교보다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해를 넘긴 정부미로 지은 밥에다 콩나물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명절 같은 때는 고깃국이 한두 번쯤 선을 보였는데 ‘황소가 강을 건넌 것 같은 멀건 국’이었다. 그래서 이름하여 ‘황우도강탕’이다.
배고픈 학생들은 외출금지를 피해 학교 울타리 너머 가게와 개구멍 거래를 했다. 이 형편을 잘 아는 사감선생님은 학생들이 내미는 돈을 살짝 가로챘다가 식당에서 나누어 주셨다. 모두가 가난하던 때라 대부분 알사탕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으므로 그 형편을 고려하신 것이다. 허기를 참지 못하는 행동파 학생들은 한밤에 부엌을 뒤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식당에 남아있는 것이라야 누룽지 조각 외에 기대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혹 상급생이 안마피리를 불러 나갔다가 손님을 맞으면 군고구마나 건빵 같은 것을 사다가 실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식당은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 사이에 위치하여 사람 모이기가 편리했다. 그런데 맹학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하급생의 위계 문제였다. 명분은 기숙생들의 질서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위계가 군대를 뺨칠 정도로 지나치게 엄격했다. 남녀 학생들의 집합에 편리한 식당이 상급생의 하급생 길들이기 장소로 자주 이용이 되었다. 그런데 식당에 모이면 퀴퀴한 음식 냄새가 찌들어 있어 학생들의 가슴을 한층 답답하게 만들었다. 도난사건 같은 것이 있을 때는 취침시간에 관계없이 밤늦도록 그곳에 기숙생들을 모아놓고 범인 색출에 애를 썼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음식 냄새만 맡으라니! 된장 냄새는 워낙 강하여 식당 전체를 사로잡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콩나물 냄새가 자꾸 군침을 삼키게 하였다.
가격 때문인지 콩나물국은 매일 나오다시피 하였다. 지금은 콩이 귀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쌀보다 잡곡이 훨씬 저렴했다. 형무소에서 정말 콩밥만 주었었는지 모르지만 무엇을 잘못하여 벌을 받을 정도일 때는 ‘너 콩밥 먹으러 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그러니까 콩이 그렇게 흔하던 시절이었다. 하여튼 맹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먹은 콩나물을 연결하면 경부선 철로보다 길 것이다.
콩은 만주일대를 비롯하여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두만강이라는 말도 그 ‘콩 두’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던 어떤 유학생은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이 내용을 발견하고 고국에 대한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콩을 두고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말은 흔히 듣던 말이 아닌가? 영양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소고기보다 콩이 항암효과를 비롯해서 더 장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는 콩처럼 좋은 식품이 없단다.
돌이켜보면 가난하던 시절의 식품이 모두 건강식이 아니었는지? 흰 백 자가 들어가 있는 백미, 백소맥분, 백설탕은 ‘3백’이라 하여 사람이 멀리해야 할 식품으로 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먹던 보리, 콩, 고구마 같은 것이 오히려 건강식품으로 추천되고 있다.
검은콩은 약콩이라 하여 동의보감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 콩나물을 기르는 콩 가운데에는 ‘쥐눈이콩’이라는 콩이 있다. 쥐의 눈처럼 생긴 이 검은콩은 약콩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메주콩인 흰콩이 더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검은콩 콩나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콩나물국을 많이 먹은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몸보신을 했던 거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려운 시절에 맹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영양부족이 많았겠지만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영양사까지 배치되어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된 요즘 학생들이 오히려 체력이 약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안마 실습을 할 때에도 체력이 달리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가난도 축복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맹학생은 이 콩의 힘으로 깡통축구에 기숙사 골목야구도 하며 생활하였다. 콩도 악조건을 잘 극복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뿌리에서 거름이 되는 질소를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비료가 없는 척박한 밭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농약이 없을 때라 콩은 완전한 유기농 무공해 식품이었다. 콩나물국은 영양도 좋지만 해독작용이 있어서 알코올 중독자에게도 약처럼 쓰인다. 또 우리들은 요즘처럼 의약품이 다양하게 개발된 시대에도 콩나물국을 감기약 대용으로 쓰고 있다.
이러한 콩나물국 효과인지 그 시절 맹학교 졸업생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장애인의 진출을 가로막던 그 높은 철책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였고 꽤 높은 건물에 외제차도 구입하며 살았다. 만약 그때 콩나물국처럼 고깃국을 학생들에게 계속하여 공급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만은 물론 고지혈증과 고혈압에 당뇨병 같은 것으로 수명까지 위협을 받지 않았을지 반문하게 된다. 콩나물이 주재료인 비빔밥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세계적인 건강식이 되지 않을지?
물릴 법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콩나물국이 그립다. 그러나 무공해 콩나물은 구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갖은양념에 정성을 기울여도 그때의 콩나물국 맛을 찾을 수 없으니 웬일일까...
(2019. 1. 15. 제1017호)
